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다원화된 현대 사회는 한 사람이 조직을 이끌 수 없다. 집단지성이 조직을 이끈다. 변화의 속도가 급속하여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하여 해결안 합의를 보기도 참 힘들다. 

집단지성은 다수결이 아니다. ‘민주주의 함정’이 있다. 소수의 진실을 다수의 표결로 덮을 때다. 한 사람의 말이 금과옥조(金科玉條)일 때가 있고, 열 사람의 백 말이 백해무익(百害無益)할 때가 있다. 

집단지성은 ‘집현(集賢)’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토론이 생명이다. 초기 경전 <육대요령> ‘사요(四要)’에서는 ‘지자본위(智者本位)’를 ‘지우차별(智愚差別)’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의견 하나가 교단에 이로움을 주고, 어리석은 의견 아홉이 교단에 해악을 끼친다. <정전>의 바른 해석을 위해 소태산께서 직접 저술한 초기 경전을 다시금 찬찬히 봐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지도층은 조직의 문제해결과 의사결정에 책임을 진다. 지도층의 권한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 아니다. 헌법·정관·헌규에서 지도층의 권한과 의무를 정한다. 감사원과 헌법재판소, 내부감사와 사외임원, 감찰원은 왜 존재할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절대적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말 없는 대중이 무섭다. 

지도층의 존재감은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지도층의 자본은 무형의 신뢰 자본이다. 위기의 본질은 신뢰의 상실이다. 언제 신뢰를 잃게 되는가? ① 측근에 직언하는 이를 내친다. ② 업적평가와 인사관리가 따로 논다. ③ 현장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④ 염불보다 잿밥, 제사보다는 제삿밥부터 챙긴다. ⑤ 조직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정전>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은 교단 지도층의 <근본규범>이다. 소태산께서는 왜 ‘요법(要法)’이라고 하셨을까?

‘죽기로써’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생의세를 위한 사무여한에 하늘이 감동해 ‘법계인증’을 받았다. 법인절이 다가온다. “끌림 없는 순일(純一)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대종경> 서품 14장). 수위단은 교단과 교법의 상징, 제생의세와 전무출신의 사표가 돼야 한다. 소태산께서 마치 살아계신 것(여재, 如在)처럼 교단 공중사를 처리해야 할 때다. 

얼마 전 제법성지 봉래정사를 찾아갔다. 실상초당 옛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새로 단장한 건물이 보였다. 낯설었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온고지신 조고회룡(溫故知新 照顧回龍)이다. 창립정신을 이어가며, 시대정신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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