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법인절은 소태산 대종사를 따르는 아홉 제자가 ‘죽기를 각오’하면서 백지혈인의 기적을 이룬 날이다. 세상을 위해, 창생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큰 원이 있었기에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원불교는 이날을 진리의 인증을 받은 날로 기념하며, 원불교의 정신적 바탕으로 삼는다. 이날, 소태산 대종사는 아홉 제자에게 법명을 지어 내리고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다’며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소태산의 언행록인 대종경에서는 ‘이 회상의 종통은 공부와 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 노력한 사람이라야 되나니라’(신성품 17장)고 했고, ‘큰 회상을 일어내는 데에는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 가진 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교단품 32장)고 했으며, ‘창립 당초의 구인을 비롯하여 이 회상과 생명을 같이 할 만한 혈심 인물이 앞으로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리라’(부촉품 10장)고 말씀했다. 

혈심이란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이름이니, 결코 거짓되거나 사사롭지가 않다. 사적 이익을 취함이 없으니 곧 공중을 위하는 마음이 가장 앞에 있다 할 수 있다. 혈심 있는 이는 내 일 보다 세상일을 우선하며, 진리로 가는 길을 떳떳이 걸으며, 우주의 큰살림을 맡아 하는 사람이기에 시방일가요 사생일신이 된다. 그래서 나 없으매 더 큰 나 드러나고 내 집 없으매 천하를 내 집 삼는 이라 할 수 있다. 

혈심이란 곧 죽기로써 하는 것을 일컫는다. 아홉 분 선진의 죽을 각오가 없었다면 어찌 백지에 혈인의 기적이 나타났겠는가. 이는 혈심에 기인한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 솔성요론에서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라 밝히고 있다. ‘죽을 각오’로 해야 마침내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혈심은 팔조 중 성(誠)과 궤를 같이 하기에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탐욕(貪慾)이나 나(懶, 게으름)와는 반대적 입장을 가지기도 한다. 

요즘, 교단에서 혈심 가진 이가 희귀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흔히 시대가 변해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는 세상이라고 하나, 공가(公家)에 머물면서도 적당히 남의 일 해 주듯 하는 풍토가 팽배하고, 자기 이익과 사상을 위해 예의와 염치를 불고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우려다. 그래서 소태산의 법문을 새긴다. ‘중생은 영리하게 제 일만 하는 것 같으나 결국 자신이 해를 보고, 불보살은 어리석게 남의 일만 해주는 것 같으나 결국 자기의 이익이 되나니라.’(대종경 요훈품 21장)

[2023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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