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희
임성희

[원불교신문=임성희]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상담실로 들어오신다. 움직임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보행기를 끌고 오기도 하면서 상담실로 들어와 한주간의 인사를 나누느라 바쁘다.

이 곳은 독거노인의 우울성향 감소를 위한 ‘해소하자 우울감, 소외감!’모래상자치료 집단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상담실이다.

처음 방문한 어르신들은 “여기는 대체 뭘 하는 곳인가”하는 호기심과 기대감, 또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상담실에 들어와서 준비돼 있는 모래상자와 소품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어르신들은 모래상자에 있는 모래를 만지며 옛날 어린 시절에 강가에서 모래놀이 하던 이야기, 흙으로 소꿉장난 하던 이야기,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이야기들을 하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러다 보면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친구들과 같이 놀지도 못하고 학교도 가지 못했던 이야기,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해 학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 젊은 시절 살기가 어려워 죽으려고 바닷가를 찾아갔던 이야기, 고된 시집살이 이야기, 술만 먹으면 집안을 때려 부수던 남편 이야기가 펼쳐진다. 꼭꼭 묻어놓았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나누며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맞장구를 치고, 그러다 한 분이 노래를 부르면 따라 부르기도 한다.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모래상자에 펼치면서 
자기를 강화하기도 한다.

과거 이야기는 이제 현재 이야기로 진행된다. 자녀들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들, 자식들 걱정, 여기저기 몸 아프고 병원 가는 이야기들 속에 서로 공감을 나누며 친밀감은 강한 유대감으로 발전한다.또 한편으로 어르신들은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모래상자에 펼치면서 소망이 실현되는 가상의 간접경험을 통해 자기를 강화하기도 한다.

집단원들은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를 높여가며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관계 경험을 하게 되며, 심리적 정서적 안정과 자기치유를 깊이 있고 온전하게 하게 된다. 

모래상자치료 집단 프로그램을 통한 자기치유를 체험한 어떤 분은 “내가 왜 이렇게 여기 와서 말을 많이 하나 생각해 봤는데 지나간 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해소하고 있는 것이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은 노년기 발달의 과제를 ‘자아통합감과 절망감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을 앞둔 노년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나온 삶을 의미 있고 만족스러웠던 것으로 받아들이면 통합감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제 기회가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20회기의 모래상자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긍정·부정적 정서들을 표현하고 현실생활의 어려움들을 직면하고 통찰하고 순화해 긍정적 삶의 자세로 전환하는 경험은 노년기의 통합과정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시도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집단원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둥근마음상담연구센터ㆍ일산교당

[2023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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