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써머즈]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 출신 유대계인 아버지의 양복 사업이 성공해 부유한 집에서 자란 오펜하이머는 어려서부터 천재였습니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공부만 하던 그는 하버드대학교 화학과에 들어가 3년 만에 최우수 졸업을 할 정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후 미국은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첩보를 확보합니다.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과학자와 공학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1급 비밀로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 총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와 ‘과학 총책임자’인 오펜하이머, 그리고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임무만 충실하게 수행했죠.

오펜하이머는 관리 업무 경력이 전무한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를 체계적으로 이끌어 결국 원자폭탄의 개발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최종 실험에서 원자폭탄의 놀라운 위력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하게 되죠. 결국 원자폭탄은 이미 항복해 버린 독일이 아니라 끝까지 투항하던 일본에 떨어지게 됩니다.
 

죽음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된 과학자
놀라운 과학적 성취와 
전 인류적 딜레마

당시 원자력위원회 의장을 지낸 루이스 스트로스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 후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의 개발을 추진하고, 원자폭탄의 개발을 후회하는 오펜하이머는 이를 반대합니다. 참고로 당시 대통령인 트루먼이 수소폭탄 개발을 승인하게 되죠. 이처럼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하게 되면서 매카시즘 광풍에 의해 소련의 간첩으로 몰리기도 합니다. 그의 사생활은 불필요하게 공개되고 결국 공직에서 쫓겨나고 이후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루이스 스트로스의 회고를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영화는 3시간에 걸쳐 불안했던 어린 시절부터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는 시기, 위력을 확인한 후 압도하는 죄책감 그리고 매카시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오펜하이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되짚습니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세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비롯한 주요 장면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놀란은 “하다못해 미니어처라 하더라도 실제 존재하는 것을 촬영해야 관객에게 사실감 있게 전달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이번 영화 역시 아이맥스 70㎜ 필름으로 촬영했습니다. 이 역시 필름의 화질과 질감이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하게 세상을 포착하기 때문이라고요.

/슬로우뉴스 전 발행인

[2023년 8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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