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경 기자
유원경 기자

10여 전쯤 부산에서 청소년교화를 담당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고등학교 인성교육반 CA를 담당했던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란?’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쪽지를 나눠줬던 일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대답 중 하나는 ‘공무원’이다. 다른 학생들의 대답도 표현은 달랐지만, 꽤 놀라웠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라던가, 어른을 대하는 예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그때 그 세대들에게 느껴지는 선생님의 이미지는 우리 세대가 배워왔던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라는 생각과 많이 다르다는 감상이 들었다.

얼마 전 초등교사 두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유인즉 교권의 문제. 초등학생들의 인권을 주장하다 보니 선생님의 인권은 무시되는 경향이 깊어진 문제였다.

요즘의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형제가 많지 않다. 하나 또는 둘만 키우다 보니 소위 ‘금쪽이’라 불리며 여간 귀하게 품는 게 아니다. 그 가운데 가정에서의 교육은 아이들을 ‘기죽지 않고 소중하게’만 양육하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절이나 타인을 위한 존중의 가르침이 적어지는 듯하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훈육하는 선생님을 존경심과 경외심의 대상인 ‘스승님’이라기보다 단지 ‘공무원’으로 보이기가 쉽다.

교육이란 학업과 동시에 그 아이에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가르치는 일이다. 공립교육으로서 학교의 위치는 바로 이러한 인격 형성과 존엄성이 함께 필요하기 때문에 학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교육 장소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교권이 무너지며, 학교는 단지 ‘지식 전달의 공간, 입시를 위한 과정’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 시대 어버이들은 자녀의 교육에 대해 지식의 가르침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인재로의 훈육이 필요한 때라는 감상이 더 크게 다가온다. 관계 속에서 도와 예를 배우고, 인간의 존엄성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배워가는 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우리의 자녀가 자라 사회에 나갔을 때 똑같은 불행을 겪지 않도록 말이다.

혹 우리 재가출가 교도님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하고 있을까. 〈예전〉을 통해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행실 가짐’이라 말씀했던 ‘조행’ 공부를 가르쳐 본 적 있을까. 정산종사의 〈세전〉을 공부하며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갈 때 어떻게 원만한 삶을 이뤄가는지 고민해 본 적 있을까. 교당을 다니면서 그토록 열심히 해왔던 나의 마음공부는 내 자녀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을까.

놓친 부분이 있는지, 원불교 교도로서 한 번쯤 돌아보기를 권한다.

[2023년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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