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영산성지 대각전(이하 영산대각전)은 영산 학원실에서 집회(법회)를 열어오다가 교도 수가 증가함에 따라 신축하게 됐다. 원기21년(1936) 10월 지금의 대각전 자리로 현대식 건물을 착공해 대중 집회의 공간을 준비했다.

영산대각전 신축 공사에는 영산지역 교도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동원됐고, 익산 총부에서는 이재철과 오창건을 건축 감독으로 파견했다. 그러다 그해 12월 초순경부터는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1개월여 기간을 친히 감독하며 심혈을 기울인 곳이다. 영산대각전 건축공사 중에 이재철의 백부 이세형 교도의 열반기념제가 있었는데, 이때 1백여 원이 의연됐다.
 

영산대각전은 동년 12월 29일(음력11월 16일) 낙성한다. 이날은 대각전 낙성식 겸 동선 결제식이 열렸는데, 매년 음력 11월 6일 해오던 동선 결제가 대각전 준공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뤄지게 된 것이다. 낙성식은 소태산 대종사 임석하에 300여 명의 교도와 주민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히 치러졌으며, 낙성식 후 50여 명이 동선에 입선해 정진하기도 했다.

소태산은 영산대각전을 지은 후 법상에 올라 뒤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 보이냐?”고 물으며 기뻐했고, 새벽에 대각전에서 좌선하는 영산학원생들을 보고 “기운이 뜬다”며 정신을 가다듬고 좌선에 정진토록 지도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영산대각전 건축 시 인부들의 대화를 들었다. “불법연구회가 영산에만 큰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웃녘에는 더 큰 집이 즐비하다. 그분들이 방언할 때도 일을 했었는데, 정성이 모두 충천하지 않는가. 저렇게 애쓰면서도 열성이 식지 아니하니 앞으로 잘 될 것은 뻔하지 않겠는가.” 소태산 대종사는 이 말을 듣고 “무릇 공부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 시작과 끝이 한결같지 못하면 그 원을 성취 못할 것이다. (중략) 그대들도 이 말을 듣고 반성하여 혹 열성이 식었으면 다시 추어 잡으라. 만일 열성이 식어가는 날에는 그 사람은 그날부터 살고도 죽은 산 송장이 되어가는 것이니, 살고도 죽은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살았으면 산 사람으로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고 법문했다(<대종경선외록> 은족법족장 3절).
 

영산대각전은 목조건축물로 214.8㎡이며, 총 공사비는 당시 3천3백여 원이 소요됐다. 건축기금은 대부분 영광지부와 각지 회원들의 의연금이었다. 

영산대각전은 원기96년(2011) 문화재청으로부터 ‘영광 원불교 영산대각전’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 제481호’에 등록됐다. 이는 근대 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원불교 고유의 건축적 특성과 건립 당시 형태를 잘 유지하는 등 종교 건축사적 가치가 높음이 평가된 것이다.

[2023년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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