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시댁 살림을 세워왔지만, 얼마의 보상도 해주지 않았던 시댁 식구들. 하지만 장도선 교도(마동교당)은 원망심 한번 내지 않았다. 더구나 풍요롭게 살았던 친정집의 가산이 기울어 어려움을 맞았지만, 세상에 대한 원망보다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해결할까’의 고민이 깊었다.

결국 장사를 해보자는 다짐으로 남편과 함께 시댁에서 분가했고, 때마침 그 소식을 들은 사촌오빠의 도움으로 소금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친정집이 대나무 비닐우산을 만들어 납품하면서 제법 넉넉한 생활을 할 때, 장 교도의 친정아버지는 주변 인연들을 알뜰히 살폈다. ‘자고로 사람은 어려운 이들을 모른 척하면 안 된다’는 친정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고, 친정아버지에게 은혜 입었던 인연들은 장 교도를 많이 도왔다.

“어렵게 시집 생활을 했지만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요. 오히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서 그저 고맙기만 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소금을 사줘서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 교도 역시 받은 만큼 베풀고자 인연들을 챙겼고, 남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늘 베풀기를 좋아했던 장 교도.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이리자선원에 봉사활동으로 방문했을 때 장 교도는 놀랐다. 원불교 교무님이 장애인들을 함께 보살피며, 늘 밝고 따뜻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천상 보살이었고, 장 교도는 그 길로 바로 입교해(원기86년(2001) 1월) 원불교와 인연이 됐다.

“교당에 다니며 교리 공부와 봉공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희한하게도 교당의 공부와 사업이 참 재밌었습니다.” 장 교도는 교당 봉공회는 물론 교구 봉공회에서 여러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함께 조력하면서 보람과 재미를 느꼈고, 무엇보다 이런 봉공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다. 

“100년 성업봉찬으로 교구마라톤 대회를 열었을 때, 음식 장만하는 일에 교당 대표로 참여했었고, 얼마 전까지 이웃돕기 밥차 조력에도 갔었어요. 그런 일들이 그냥 좋더라고요.” 장 교도에게 봉공은 항상 감사였고 행복이었다고. 

“얼마 전부터 암투병하면서 이제 봉공회 활동을 더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늘 고마운 일이 많았죠. 무엇보다 둘째 사위로 교무님(유덕종 교무)를 얻었는데요, 참 복이 많구나 싶어요. 행복합니다.”

[2023년 8월 3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