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 시인의 시를 읽을 때 ‘나의 시’를 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내 가슴에 깊이 닿아오는 시는 ‘나의 시’이기 때문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바라보지 않으면 나의 바다가 될 수 없고, 산도 나무도 그러함을 그가 일깨운다. 정호승 시인이다. 

정 시인은 올해로 한국 문단 등단 51년이 된다. 신작 시집 14권, 1100여 편의 시가 독자들의 가슴에 닿아 ‘나의(독자) 시’가 됐다. “모든 사람은 시인입니다. 시인의 어떤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지요. 가슴 속에 있는 시의 영혼을 누구나 다 시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인이 대신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써야 할 시를 시인이 대신 쓸 뿐’이라는 정 시인과의 대화가 깊어졌다.
 

시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
“우리는 살면서 자기만의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의 삶이 곧 타자를 위한 삶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머니의 삶도 그렇지요. 어머니로서 삶을 살면서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것처럼 시인으로서의 삶은 곧 다른 사람의 시적 영혼을 꽃피워 주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으면서 ‘나도 이런 생각을 했고 내 가슴 속에 삶의 비밀을 엿본 적이 있는데, 이 시인이 이를 시로 썼구나’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기쁨에 속한 일입니다.”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가치
“시를 이해하는 것은, 시를 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이 그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시에서 ‘그늘’, ‘눈물’의 의미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에 고통이 없기를 바랍니다. 고통이 없는 삶은 없지요. 고통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살아있으니까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생명의 가치와 고통의 가치는 같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 사는 인간이라는 한 마리 물고기입니다. 물속에 살면서도 목말라 하는 물고기입니다. 그래도 물속에 살아야 합니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달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절망이 있으면 희망이 있지요. 그래서 인생은 완성됩니다. (<풍경 달다>) 풍경이 자기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바람 때문입니다. 관계는 내 존재의 가치입니다. 당신이 있으니 내가 있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는 거지요. 모든 관계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야 모든 관계가 화목해집니다. 사랑의 관계가 됩니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 사는
인간이라는 한 마리 물고기입니다.
물속에 살면서도 목말라 하는 물고기입니다.
그래도 물속에 살아야 합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수선화에게>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인생이 너무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왜 외로운가 해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입니다.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본질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입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되는 시의 제목이 <수선화에게>인 이유를 정 시인에게 물었다. “수선화의 연노란꽃 빛, 수선화의 꽃대가 굉장히 연약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산산조각>
“네팔 정부에서 2002년에 룸비니를 부처님의 성지로 선포했는데, 저는 2000년에 룸비니 순례를 했습니다. 철조망 정문 앞에 노파 한 분이 가마니를 깔아놓고, 룸비니 지역의 황토로 만든 (앉아계신) 부처님을 팔고 있었어요. 순례 기념품으로 사 와서 책상 위에 두고 나니, 방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까 걱정이 돼요. 내 인생이 또 산산조각이 나면 어떡하나 그 걱정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열심히 살면 되는데, 항상 내일을 걱정합니다. 저도 자꾸 깨질 것을 걱정하니까, 제 시적 상상 속에 있는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자연스럽게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로 대화가 이어졌다. “바닥은 딛고 일어서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닥이 존재함으로 나를 받쳐줍니다. 나는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됩니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는 결국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희망은 생명이다’라는 정 시인의 말이 잔잔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어느 날 저에게 (주문하지 않았는데) 슬픔이라는 택배가 왔습니다. 슬픔이라는 택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가 생각할 때는 ‘이별’이라는 택배입니다. 가장 큰 이별은 죽음이라는 이별이지요. 우리는 누구나 죽음이라는 이별의 택배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의 택배를 받았을 때 왜 내가 받아야되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야 됩니다. 감사와 기쁨의 택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슬픔의 택배가 있습니다.” 

정 시인은 시를 끊임없이 고쳐 쓴다. ‘더 이상 고쳐쓰기 어렵기 때문에 발표’한다. 고쳐 쓴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든 노력을 위해, 그는 오늘도 우리를 대신해 ‘누가 저 눈길 위에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갈’ 것이다.

[2023년 9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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