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갑 원로교무
권도갑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권도갑 원로교무] 소태산은 열반 게송을 설하시고 “이 진리를 사량으로만 알려하지 말고 관조로써 깨쳐 얻으라”고 부촉하셨다. 아무리 존엄한 법문이라도 이를 사경하고 암송하여 머리에 지식으로만 남으면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초기불교에서도 부처님은 이런 법문을 자주 하셨다. “내가 하는 말이라도 무조건 믿지 말라. 스스로 의문을 걸어서 터득하라” 하셨다. 이미 알고 있으니 자신에게 물어서 답을 얻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모르며 무지하다고 보았다. 때문에 오랜 세월 주입식 교육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부지런히 배워서 암기하고 시험을 잘 치면 좋은 학교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으며 성공하고 출세했다. 그 사람이 공부 잘하는 것은 얼마나 암기력이 좋은가로 결정됐다. 이제 세상은 변해 암기력이 아닌 창의력이 삶을 좌우한다. 암기는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오늘날 생명공학에선 인간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자 정보에 우주가 빅뱅 했을 때부터 140억 년을 살아 온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밝혔다. 사람이 이생에 나고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엄청난 지혜를 품고 윤회한다는 사실을 과학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선사들은 답은 내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의심을 걸어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라.
이것이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교육혁명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 문제를 부단히 물어서 깨달음을 얻었다. 제자에게도 답을 알려주지 않고 자기에게 물어서 깨치도록 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요즘 뇌 과학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정보를 지니고 있으니 자신에게 물어서 답을 얻으라고 한다. 이것이 교육혁신이다.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경전을 읽고 공부하며 얻은 지식들은 깨달음은 주지 않고 얼마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법문 듣는 것은 좋아하나 나에게 질문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현장에서 교리를 가르치면서 자신에게 묻지 않는 공부를 하고 있다면 세상을 교화할 수 있을까? 
 
원불교인은 일원상 서원문을 독송한다. ‘어리석은 중생은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 하는데, 어떻게 일원상을 체 받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는가? 의문을 걸지 않고 그냥 배워 얻으면 그것은 생각으로 남아서 지혜로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법문을 외워서 머리에 가득 찬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화두를 지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의두가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공부인에게 가장 큰 불행이다. 
 
우리는 늘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운다. 그런데 어떻게 자성을 세우는가를 묻고 있는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어떻게 돌리는지를 물어야 한다. 의심을 품고 물으면 반드시 답이 찾아온다. 이런 경험은 나에 대해 높은 자존감을 갖게 할 것이다. 

묻지 않으면 지식의 노예가 된다. 이에 공감한다면 기쁨에 차서 자기에게 질문부터 시작하라. 주입식 공부 보다 훨씬 빠르게 깊은 자각을 체험할 것이다. 누구도 나를 깨닫게 할 수 없다. 스스로 의심을 걸어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라. 이것이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교육혁명이다.

[2023년 9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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