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그날의 주인공은 원불교 여성교무들이었다. 

세계 종교인 및 석학들이 모인 2023 종교연합 세계시민회의 첫날, 코로나19를 넘어 마주한 설렘과 긴장 사이를 누빈 것은 여성교무들의 말과 옷깃이었다. 언어는 품위 있었고, 태도는 장중했으며, 표정은 온화했다. 누가 이들을 꽃이라 하는가, 그날 그들은 초록 잎으로 울창한 나무와도 같았다.

영어 실력이나 대회 경험을 넘어선 무언가가 여성교무들에게는 있었다. 먼저 대화를 건네고, 서로를 소개하며, 어젠다를 향한 대화를 이끄는 모습에서, 누구나 그 높은 자존감과 큰 공익심, 지성과 센스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나무들을 키워낸 우리의 토양과 바람을 떠올렸다.

종종, 우리에게는 익숙하나 세상은 놀라는 장면들이 있다. 상석에 앉은 여성교무와 차를 내오는 남성교무에 놀라는 외부인의 놀람은 꽤 빈번하다. 남녀를 떠나 선배는 선배로 모시고 상사는 상사로 받드는 모습, 성별이라는 ‘상’에서 자유로운 이 장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큰 울림인지, 이걸 다른 누구에게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어 나는 늘 안절부절이다. 

원불교 여성 성직자의 위상과 성평등. 소태산의 혁신은 얼마든지 더 있지만, 세상이 지금 갈구하는 혁신은 바로 이것이다. 평등이 퇴색하고 혐오가 판치는 이때, 평등이라는 교리와 실천은 세상에 울림이 된다. 종교를 믿는 국민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종교 비호감의 시대, 특히 종교계 성차별은 주된 이유로 꼽힌다. 너도나도 ‘우린 달라졌다’고 외치는 이때, 원불교는 이미 종교 이미지를 제고할 중요한 키워드를 쥐고 있다.

세상 대부분의 종교에서 여성 성직자들을 서브이자 보좌로 삼을 때, 우리는 궁촌 벽지 꼬장꼬장한 할배들 앞에 젊은 여성교무를 세워 법을 설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본 딸들이 출가해 지금 곳곳에 아름드리나무로 우뚝 섰다. 바꿔 생각해보면, 여기에 전반적인 감소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여성 출가자 감소에 대한 해법이 있을 수 있다. 여성교정원장이 두 번이나 탄생했고, 여성교무도 결혼을 선택할 수 있으며, 기혼여성도 성직자로 살다 후진들에게 추앙받는 종단. 이 모습을 더 드러낸다면 그 삶을 더 많이 꿈꾸지 않을까. 

원불교 여성교무들은 ‘정녀 성직자’나 ‘여성 불자’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교단의 역사이자 한국 사회의 위대한 유산이다. 교단 3대 역사 동안 초록 잎의 나무가 자라 아름드리가 되고 숲을 이뤘다. 

잊지 말자, 우리는 그 위대한 숲을 가진 종교다.

[2023년 9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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