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김해성냥전시관.
출처 김해성냥전시관.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케이크에 촛불을 켜면서 문득 드는 생각. 성냥은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 생산됐을까. 바로 김해시 진영읍에서 2017년 7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사라졌다고 한다(출처 김해성냥전시관).

한국 성냥의 시초는 바로 인광노(引光奴). 한자말 풀이 그대로 ‘빛을 나르는 종’이라는 뜻인 인광노는 불씨를 옮기는 데 이용했던 조선시대의 성냥이다. 호롱불에 불을 붙일 수 있도록 불씨를 옮기는 나무껍질 정도로 이해하면 쉬울까. 여하튼 인광노는 성냥이 들어오면서 사라지게 됐다. 

부싯돌로 열심히 불을 지펴 불을 옮기던 그 시기, 간단하게 손짓 한 번으로 불을 지핀다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폭발적인 수요와 함께 성냥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950~1970년대는 성냥의 전성시대였고, 다방에서 연인들이 성냥개비 탑 쌓기를 하는 모습도, 집들이 때 불꽃처럼 일어나라고 성냥을 선물하는 풍속도 그 시절 이야기다. 최고의 집들이, 개업선물이 성냥이었고, 광고 판촉물로서도 인기 만점이었다. 여기에 추억의 성냥 쌓기 놀이는 덤이다.

그 시절, 성냥을 만드는 과정에서 퇴짜맞은 불량 성냥을 거리 곳곳에서 ‘됫박’에 담아 싼값에 팔았던 ‘됫박성냥’도 있었다. 실은 성냥 두 개비가 붙어있는 불량품이 대부분이라 실속은 없었지만, 성냥갑에 든 온전한 성냥은 비싸서 서민들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았다고.

1980년대 편리한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보급되면서 성냥 주문량은 급속도로 줄었고, 값싼 중국산 성냥까지 밀려 들어오면서 그나마 판촉 홍보물로 버텨왔던 성냥 공장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성냥은 한 번 쓰면 버려야 하고, 부피가 크다는 점에서 라이터에게 완패한 것이다.

자, 이제 추억의 팔각성냥 하나 꺼내 딱! 하고 추억의 불을 당겨보자. 영웅본색의 주윤발을 흉내 내며 씹어보던 성냥 한 개비, 커피숍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성냥개비로 쌓던 피라미드, 박스 가득 모으던 독특한 성냥갑까지, 우연히 그려본 성냥 하나로 추억 하나 피워본다. 

[2023년 9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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