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최근 우리는 오래된 단어 하나를 꺼내 곱씹었다. 바로 ‘안전’이다. 정직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곳이었던 대한민국의 안전이 대낮에, 쇼핑몰에서, 출근길에서 파괴됐다. 두려운 것은 더러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더 무서운 것은 이를 엄벌과 같은 또 다른 폭력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며, 누구나 불현듯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시대. 이 살얼음판을, 종교는 어떻게 녹여 사람들이 마음 놓고 걷게 할 것인가. 이를 숫자로 들여다보자.

일상 속에 많은 폭력이 편재해 있는 나라
한국이 ‘안전한 나라’라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살인과 절도 등 형법 범죄의 숫자가 근거다. 2021년 세계 200여 개국 중 한국은 살인율이 15번째로 낮고(유엔마약범죄사무소), 절도율은 10만 명당 63건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뉴질랜드(1086), 스웨덴(781)에 비하면 압도적 최저다(슈타티스타). 지난 10년간의 추이도 힘을 더해준다. 인구 10만명당 형법 범죄는 2011년 1,997건에서 2021년 1,773건으로, 살인은 2.4건에서 1.3건으로, 강도는 8.1건에서 1.0건으로 줄었다(검찰청). 

하지만 폭력·상해는 장기적으로 증가추세여서, 2000년 인구 10만명당 106건이던 것이 2021년에는 290건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성범죄도 증가했다. 2014년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은 인구 10만명당 58.8건이었는데, 2021년에는 63.6건이 된 것이다. 이를 신진욱 교수(중앙대)는 이렇게 정리한다. “한국은 살인, 강도, 절도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일상 속에 많은 폭력이 편재해 있는 나라다.”

일상 속의 폭력은 여러 통계로도 드러난다. 사이버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21만8천건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특히 불법콘텐츠 범죄가 3년 연속 증가했다.

2021년 아동학대 피해 경험률은 인구 10만명당 502.2건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특히 증가했다.
 

강력범죄 적지만 폭력·상해·성범죄·아동학대는 증가추세
고립이 사회 증오·자살 유도… 엄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사회적 안전망 관심, 이해와 온정·종교 역할 중요한 시대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왜 두려워하는가
다시, 우리는 안전한가. 안전은, 범죄율이라는 숫자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그렇게 느끼는지에 달려있다. 

우리는 범죄에 비해 범죄 불안이 큰 나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6개 국가를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인은 범죄를 경험한 비율은 가장 낮았으나 범죄불안지수는 가장 높았다. 우리는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몹시 두려워한다. 이 큰 원인으로, 사회관계의 단절과 타인에 대한 불신이 지목됐다. 바로 최근 무차별 범죄의 배경으로 조명되는 ‘고립’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숫자들은 고립, 즉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들의 파편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짚고 있다. 무차별 범죄는, 고립된 생활 속에 범죄화된 사람이 폭력을 표출한 결과다. 고립된 더 많은 사람은 사회를 원망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해친다. 이 결과가 바로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이다.

하루에 36.5명이 자살하며, 96명이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사회를 과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두 축인 무차별 범죄와 자살의 배경에는 이 ‘고립’이 있다. 고립의 심화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2021년 사회적 고립도 34.1%는 2년 전(27.7%)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고립감과 범죄불안지수가 특히 높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의 해법을 공권력 강화 및 엄벌주의로 하려는 분위기가 짙다. 과연 형량을 높이는 것이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해줄까? 이와 관련해 유명한 통계가 있다. 세계 인구 중 미국 인구는 5%인데, 전 세계 감옥에 있는 사람 중 25%가 미국 감옥에 있다. 이런 엄벌주의의 결과는 어떨까. 한국의 살인율이 10만명당 1.3명이던 2021년, 미국의 살인율은 6.8명이었다. 고립을, 권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신진욱 교수는 “지금 우리가 주시해야 할 대상은 정유정이나 조선, 최원종의 얼굴이 아니다.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해야 할 것은 아노미, 무규범 상태에 이른 사회 해체의 현실이다”고 말한다. 우선 ‘묻지마범죄’, ‘고독한늑대’ 등의 용어와 같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주시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 극한의 경쟁, 끝없는 비교와 평가, 실패와 낙오의 두려움, 힘 있는 자들의 횡포, 차별과 무시, 폭언과 성과 압력, 인간관계의 단절 등이다. 이러한 ‘반사회적’ 현상 즉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에 관심을 갖고, 이해와 대화와 온정과 변화로 풀어가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종교’를 꼽는 이유다. 

법당 분향소, 종교 연대 사형제 폐지 성명
종교계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는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는 자신이 사회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적 안전망의 기능이 요구된다고 짚었다. 김선류 신부(춘천교구)도 “무차별 범죄가 발생했을 때, 교회 내 생명운동 기구들이 협력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가톨릭은 지역 이름이 붙은 본당(교당)이 지역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 행복선원의 경우 법당에 피해자 분향소를 마련하고 추모객들에게 호신용품을 나눈다. 인근 지하철역 피켓팅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종교의 면모를 보였다. 원불교를 비롯한 7대 종단이 참여하는 한국사형제도폐지범종교연합회는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참혹한 형벌로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방식”을 우려하며,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발생 자체를 줄이는 예방정책을 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폭력의 시대, 원불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뉴스를 접하고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도 트라우마를 겪으니, 우리 모두는 이미 피해자이며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안고 산다. 고립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의 제생의세일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돌리자. 지금 세상은 우리의 지혜와 온정을 기다리고 있다.

[2023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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