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여고시절, 하교시간이면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틈에서 홀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일찍 가니?” 하고 물었다. 친구는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해야해”라고 답했다. 그 친구가 말한 ‘집’은 교당이었다. 당시 간사생활을 하던 여고동창 이관도 교무를 떠올리며 임성옥 교도(신림교당)은 “그게 원불교와의 첫 인연”이라 회상했다.

임 교도의 인생에 다시 원불교가 깃든 것은 결혼할 때였다. “제 입교일은 1981년 11월 29일, 제 결혼식날이에요.” 신림교당이 지금의 자리로 이사하기 전부터 그 교당에 다니던 시부모님. 그때 임 교도는 ‘아 나와 원불교는 인연이 깊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마음없이 자신을 딸처럼 여겨주시는 두 분을 따라 교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3년 되던 해에 아버님이 갑자기 열반하셨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열반해서 법호도 못 받으시고….” 임 교도는 교당에서 시아버지 천도재를 지내며 ‘아버님 몫까지 원불교에 임하겠다’고 다짐했고,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원상 서원문과 계문 속 의미를 배우며 깊이를 넓혀갔다. 

언덕배기 방 한 칸, 당시 교도회장도 없었던 신림교당. 임 교도는 교당 이사를 앞두고 갈 데 없던 교무님을 집으로 모셨고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해주며 함께 법회를 봤다. “신림교당이 지어져서 그곳에서 법회를 보는데 마치 우리집이 이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고요.” 기억을 더듬던 임 교도가 당시의 감격에 눈시울을 붉힌다.

그는 “인생을 돌아보니 늘 곳곳에 원불교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의 치매, 남편의 우울증, 아들의 방황… 인생의 고비가 한꺼번에 덮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교당에서 그에게 회계 업무를 부탁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주판을 두드리며 교당 살림을 정리하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그래도 힘든 내게 왜 이런 일을 주시나’ 싶더라고요.” 허나 그 일을 함으로써 고난에 마음을 오래 쓰지 않게 됐고, ‘교당을 위한 일을 하고있다’는 보람에 일상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교무님이 그때 ‘그 공부’를 시키셨구나, 하는 것을 이제는 알아요.” 

원불교 입교 후 30년이 넘은 지금, 여전히 그의 마음은 오롯하게 원불교로 흐른다. “원불교는 내 삶의 길잡이에요.” 

앞으로 70세, 80세가 된 후에도 어떻게 원불교 공부를 할까 궁리한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처음 원불교를 알았을 그때처럼 반짝인다.

[2023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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