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해 기자
장지해 기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우리 담임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선생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교무님을 만나 대화를 하며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 모습은 교무님에 훨씬 가까웠다. 그래서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출가해 교무가 됐다.

이후, 어느 때부터인가 가까운 주변은 물론이고 건너건너로부터 “요즘 선생님 하기 정말 힘들어”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요즘, 여러 초등교사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진다. 갑자기 생긴 일들이 아닌데 근래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됐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하나둘,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주고받은 카톡이며 통화 내용을 보고 듣자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가만, 왜인지 낯익다. ‘뭐지? 왜지?’ 의문은 문제 사례로 등장하는 이야기 속 ‘선생님’의 자리에 ‘교무님’을 대입하자 풀렸다. ‘선생님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교무에게도 별다르지 않은 상황이 종종 있는 탓이다. 

교사는 당연히, 교사로서 해야 할 역할과 의무, 책임에 힘써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사 개개인은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한 의견을 객관적으로 수용하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런 역할이라고 해서 일방적인 악성 민원, 과한 요구, 시도 때도 없는 연락까지 다 감내하라는 건 과하다. 

우리에 비춰보자. 교무는 교무로서 마땅히 이 공부 이 사업에 실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전무출신 정신과 교단 창립정신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교무이니 이런 말을 들어도 다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은근한 비방과 비난을 투척하는 건 일방적이고 잔인하다.

교사든 교무든, ‘공인’이라 치부되며 갖가지 잣대가 들이대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힘듦을 겪는다. 혹 어떤 대응을 하면 ‘선생님이(교무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물론 사람을 지도하고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니 그 역할과 책임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사도 교무도 결국 ‘사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당연한 나의 권리’라 여기며 쉬이 남기는 비아냥 섞인 글 한 줄이, 가볍게 던지는 무자비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상처가 된다.‘인과의 이치’를 아는 원불교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면 안 된다. 

안팎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때다. 

[2023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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