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소장
이준원 소장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신화와 설화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인간의 본성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몸은 하나이나 머리가 둘 달린 공명조(共命鳥)가 살고 있었다. 자신이 더 살기 위해 서로 다퉜다. 한 머리가 다른 머리를 죽이자 자신도 죽었다.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를 가르친다. 

권력은 사람을 낚는 미끼, 돈은 가시 달린 장미와도 같다. 눈이 멀면 미끼도 가시도 보이지 않는다.  

법률은 왜 있는가? 무법천지가 되면 최소한의 도덕이 잘 안 지켜지기 때문이다. 법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지만, 법이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어기는 사람이 있다. 시기와 질투로 견제를 할 수도 있지만, 원망심과 증오심은 다른 동물보다 못한 괴물을 낳는다.
경쟁자는 적이 아니다. 경쟁자가 있기에 강해지지만, 적은 ‘너 죽고 나 살기’다. 차별적 기술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면 원가와 품질 혁신으로 가성비가 뛰어난 상품이 개발된다. 소비자들이 줄지어 구매한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그러나, 독식을 하게 되면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병행한다. 

조직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인간관계가 좋다고 해서 출세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욕 먹는 사람이 출세하기도 한다. 왜 욕을 들을까? 사람의 기억력은 참 재미있다. 자신이 준 것, 잘한 일은 잘 기억하면서도 자신이 받은 것, 자신이 못 한 일은 쉽게 잊어버린다. 지나간 일은 잘 보여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는 힘들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가 왜 유명할까?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안긴 죽은 예수의 모습은 정면에서는 잘 안 보인다. 위에서 ‘신의 시선’으로 내려다봐야 고통 속에서 부활할 듯한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분이 아닌 전체,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입장(立場, Stand-point)과 관점(觀點, View-point)에서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때 결실을 볼 수 있다. 단, 인내력과 포용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해로움을 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고진감래(苦盡甘來), 은생어해(恩生於害)라는 말은 빈말인가? 요즘 가정도 사회도 다 병들었다. 교육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교육은 양 날개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관계가 이전과 너무 다른 세상이다. 원망심과 증오심으로 마음 병이 나서 그런가?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됐다. 소태산의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을 다시 본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9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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