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써머즈] 남편 현수와 임신한 아내 수진은 한 아파트에서 알콩달콩한 일상을 보내는 행복한 신혼부부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수진은 남편 현수가 침대에 앉아 중얼거리는 걸 봅니다. “누가 들어왔어.” 그냥 잠꼬대인가 생각했지만, 저 멀리 베란다 문에 슬리퍼 한 짝이 끼어있고, 현수의 발에 다른 한 짝이 신겨져 있는 걸 알게 됩니다.

그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시작됩니다. 현수는 자면서 몸을 긁어 피를 내거나 몽유병인 것처럼 자다가 걸어 나와 냉장고를 열고 날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심지어 창밖으로 뛰어내리려고도 합니다. 행복했던 일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 이 부부의 아파트에는 공포의 기운이 감돌게 되며 수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잠>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지점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영화는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수의 이상 행동으로 시작하는 1장, 수진이 이를 해결하려다가 점점 힘들어지는 2장,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절정으로 돌진하는 3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현수에게 나타난 이상 증세의 원인도 관객이 어떻게 감상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재밌습니다. 오컬트 영화처럼 현수의 몸에 어떤 귀신이라도 씌인 걸까요? 아니면 몽유병 증상일 뿐이니 의학적인 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흔히 하나의 현상을 보고 여러 가지 추론을 하다가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지만, 이 영화는 흥미로운 결론을 제시합니다. 스포일러가 되니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이 과정에서 부부 혹은, 파트너가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영화는 시종일관 오컬트 영화와 미스터리 사이를 오가면서도, 그 모든 일들이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안전해야 할 집이 두려움을 주는 장소로 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원인으로 돌변합니다. 거기서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가족의 정서를 놓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결국 가족이 소중하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요.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첫 연출작입니다. 이선균과 정유미가 각각 현수와 수진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 내내 거의 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돼 요즘 말로 두 명의 주연 배우가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멱살 잡고 끌고 가야 하는데 이를 훌륭히 해냈습니다.

/슬로우뉴스 전 발행인

[2023년 9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