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조각 같은 외모나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면 신의 피조물이라고 감탄하거나, 모든 면에 빼어난 인물을 보면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하늘이 낸 사람이라 찬양하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하늘 아래 신이 만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신이 만든 모든 것은 완벽하다. 일체 만물은 신의 작품이라 완벽하며, 일체의 움직임은 다 신의 작용이라 온전하다. 

진리는 텅 빈 가운데 음양의 기운이 가득하여 우주 삼라만상을 영원히 살아있게 한다. 그 텅 빈 것이 음양의 기운으로 일체를 낳고 기르고 다시 거두어가며, 다 보고 다 알아 작용한 그대로 정확히 되돌려 드러내 주고 있다. 지금 나타난 그대로가 다 신의 모습이며 진리이며 본성이며 법이며 경전이다. 

경전이란 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사서삼경이나 팔만대장경이나 교회의 서적들만 경전이 아니다. 신이, 진리가, 성품이 삼라만상으로 온 천지에 드러나 있는 이것이 생생약동하는 진짜 경전이다. 

진리를 글로 표현한 경전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지역에 따라 시절에 따라 수없이 첨삭되고 재편돼 왔으므로 무오류가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경전을 다 합해도 이 무량한 참 경전에 비하면 한 줄 분량도 되지 않는다. 매 순간 펼쳐지는 진리의 소식, 무량한 작용은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삼라만상의 운영자가
무엇인지 골똘히 찾으며
화두를 강하게 들고 놓지 말라.

매 순간 전개되는 일체 우주 현상은 진공묘유, 공적영지, 불생불멸 인과보응이 여실히 드러나는 참 경전, 산 경전, 삼라만상 경전이다. 무량하게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이 경전을 발견하는 것, 우주법계 모두가 경전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 견성이다. 일체가 신의 작품이며 신의 피조물이며, 생생한 삼라만상 경전이다. 삼라만상에 전개되는 이 놀라운 신의 작품들인 경전이 보인다면 그것처럼 큰 행운이 없다. 

일체를 신의 작품이며 신으로 대하는 그것이 바로 신앙이며, 신의 입장에서 이 육근을 작용하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런 모습이든 저런 모습이든, 파괴든 죽음이든 모두 신의 작용이며, 불생불멸 인과보응이 작용 되는 엄숙한 경전이다. 자신을 대하거나 일체 만물을 대하거나 신으로, 신의 작용으로 경건하게 대하면 그것이 곧 신앙이요 수행이다. 

오직 인간이 만들어낸 분별심만이 괴로움의 근원이다. 전체에 턱 머물러 분별심만 내려놓으면 일체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신의 작품이며 신의 작용인데, 스스로 만든 허깨비 망상을 끌어안고 창살 없는 감옥을 만들어 몸부림치는 이는 바보다. 높고 낮음도, 좋고 나쁨도 없으니, 주어지는 대로 무심히 잘 지내는 이는 현명하며, 그 순간이 바로 극락이다. 

경전 많이 읽고 쓴다고 깨달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안 한 것보단 낫지만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연기 같은 생명, 하루라도 젊을 때 어서 깨치는 데 공들일 일이다. 
모든 존재, 모든 작용, 허공 일체를 묘하게 바라보라. 일체가 신의 작용이며 곧 신임을 믿으라. 산 경전, 삼라만상의 운영자가 무엇인지 골똘히 찾으며 화두를 강하게 들고 놓지 말라.

삼라만상 산 경전이 매 순간 이렇게 생생히 전개되고 있는데 눈앞에 이 완벽한 경전을 두고도 두 눈 뜨고 못 본다니 참 신통할 따름이다. 신이 만든 것은 모두 완벽하며, 신의 작용은 모두 온전하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며,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하늘이 낸 사람들이다!

/변산원광선원

[2023년 9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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