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우주를 다 준다 해도 내 생명을 앗아간다면 모든 건 허사가 된다. 평생을 기다려 탐낸 몇 곱절의 금은보화가 주어진다 한들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질 운명이라면 그 보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당장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다’는 속담도 생명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약과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일을 다반사처럼 여겨온 과오가 크다. 원시 시대에는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는가 하면, 집단생활 이후에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듯 살상을 일삼았으며, 근세에는 국가와 영토의 수호란 이름으로 생명살상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현대 사회에 와서도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에 경제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전장의 사지로 몰아넣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이 곧 누군가에게는 이익실현의 대가로 지불되는 슬픈 현실이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극도의 경쟁사회로 치달으면서 우리 삶의 현장도 전장화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의 결과물들은 무차별적 폭력과 묻지마 살인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 사회를 불안에 떨게 만든다. 더 슬픈 일은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행하는 일이고 사람이 당하는 일이기에 아픔이 더욱 크다.

최근, 교단은 원불교란 이름으로 대한민국 자살예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이는 그동안 교정원 문화사회부가 주관이 되어 자살예방전문가 양성과 다시살림캠페인을 통한 생명존중 문화를 확산시킨 공로라 할 수 있다.

생명을 살리고 구제하는 일은 종교에 있어 최고의 덕목이자 최상의 가치다. 그러기에 크게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억울한 생명희생을 비롯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으로 희생된 생명들에 대한 위로,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사건과 사고를 통해 생명의 손상을 가져오는 모든 일에 대해 종교가 먼저 위로를 건네야 한다. 더 나아가 종교는 생명을 가진 모든 사물에 대한 희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내야 하고, 무정물까지도 함부로 훼손되는 것에 대해 애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 만물은 필히 인과의 관계로 통하기에 무정물의 훼손이 가져오는 죄벌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당장 우리 시대의 위기로 떠오른 환경훼손 문제와도 직결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유정․무정물은 함부로 할 대상이 하나도 없다. 그러기에 삶은 늘 여리박빙(如履薄氷)해야 한다.

[2023년 9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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