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그때, 인형이 내게로 왔다.

마흔여덟 살, 돌아보니 세상에 내가 없었다. 아팠던 둘째의 치료를 위해 영광에서 경주 안강으로 찾아든지 10여년차였다. 아이는 잘 커줬지만, 경력을 살려 다시 교직 생활을 하기는 어려웠다. 마침 갱년기를 호되게 앓으면서, 구은혜 교도(본명 은정, 안강교당)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런 그의 눈에 문득 첫째의 쿠션이 들어왔다. 어린시절 무심히 만들어줬던 그 쿠션을, 아이는 성인이 되도록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저토록 소중한 것을 내가 만들어줬었구나, 나중에 손주에게는 애착인형을 만들어줘야지,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바늘을 잡았습니다.”

책을 한아름 들이고 유튜브를 찾았다. 주변에서는 “하던 것도 놓아야 할 나이에 무슨짓이냐”며 타박했지만 그는 꿋꿋했다. 

“포기할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제게 인형은 유일한 친구였거든요. 내가 받던 위로와 온기를, 이제는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바늘을 잡으며 어깨는 더 웅크러들었지만, 마음만은 날개 단 듯 넓게 펴졌다. 눈과 손의 맵시는 다시 살아 실에 숨을 불어넣었다. 바늘에 찔려 피도 나고 손끝은 밭일하는 촌부마냥 쩍쩍 갈라졌지만, 실만 잡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티끌없는 은혜와 감사. 그렇게, 그에게로 인형이 왔다.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절 손뜨개인형에서 위로와 온기 느껴
가족들의 응원 큰 힘, 신심으로 한 땀 효심으로 한 땀
영산성지고·성지송학중 교사 10년…인형으로 아이들과 소통

시어머니가 보고 또 본 인형
본래 책을 펴면 마지막장까지 한 자리에서 봐야하는 사람이었다. 유튜브를 보며 동물들을 뜨고나니 재미가 붙었다. 다만 가족의 염려가 문제였다.  

“사실 제가 목과 허리 디스크가 심하고 관절염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몇시간씩 꿈쩍 않고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특히 시어머니께서 걱정하셨죠.”

눈치가 보였던 구 교도의 해법은 바로 교무님 인형이었다. 시어머니(정삼현 교도, 분당교당) 가방에 달아드릴 키링을 만들자 싶어 여자교무님을 떴다. 결과는 실패였다. 모양은 대충 나왔지만, 교무님 머리에 감히 고리를 달 수 없어서였다. 

“저에게는 실패였지만, 반응은 놀라웠어요. 식탁에 세워뒀는데, 어머님이 화장실 가면서 한번 보시고 나오면서 또 보시고, 밥도 인형을 보고나서 드시는 거예요. 좋은 일도 하고 효도도 하고, 이거다 싶었습니다(웃음).”

그렇게 교무님 인형들이 세상에 나왔다. 처음에는 2등신 귀여운 모양이었다가 몸이 길어지기도 하고, 30센티가 넘는 대작이 되기도 했다. 시누이 임성윤 교무가 보고는 연말 선물로, 법호수여 기념 선물로도 주문했다. 한 땀 한 땀 빚어낸 그의 인형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마음따라 인형 표정도 달라져
“남자 교무 모델은 소태산 대종사님이었고, 여자 교무 모델은 장혜성 전 감찰원장님이었어요. 부담스러웠던 얼굴은 고민을 거듭하다 지금처럼 됐어요. 단순하지만 온화하고, 입이 없죠. 보는 사람이 기쁜 마음이면 기쁜 얼굴로 보이고, 경계가 있으면 인형에게도 경계가 읽히는 거죠.” 

입은 없지만 그의 인형에게는 옷이며 소품들이 많다. 흔히 몸과 옷을 일체형으로 한번에 뜨곤 하는데, 그는 굳이 하나하나 떠서 입힌다. 안경부터 법락, 두루마기, 저고리, 신발까지 다 따로 뜨니, 이제껏 만든 교무님 인형은 250개인데 소품은 2000개를 훌쩍 넘는다. 손톱만한 짚신이며 얇고 섬세한 두루마기를 위해 가뜩이나 얇은 실을 일일이 손으로 갈라 쓰기까지 하는 그다.

“시어머니와 남편(임현덕 교도) 등 가족들이 좋아하니 소소하게 뜬 건데, 원불교출판사에서 달력 작업 제안이 왔어요. 과연 십상을 비롯해 열두장을 채워낼 수 있을까 고민돼서요.”

달력 작업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세상의 십상을 다 봤고, 그 순간을 수천수만 번 떠올렸다. 무한한 상상력과 고민을 그 한 장 한 장에 담았다. 관천기의상에서는 의문을 물음표로 따로 떠서 표현했고, 영산방언상에선 논일하는 가운데 새참을 이고오는 아낙에게 업힌 아기까지 따로 떴다. 특히 백지였던 1월과 12월은 순수한 그의 창작이다.

“12월을 고민하던 중에 네팔의 원성천 교무님 열반 소식을 들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미국인인 원대선 교무님도 봤고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교무님들의 모습을 통해 세계교화의 염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영산성지고 개교 교사로 교단과 인연
내년 한 해를 다정한 위로와 따뜻한 온기로 채워줄 손뜨개 십상의 엄마 구은혜 교도. 교단과의 인연은 1997년 인가 전의 영산성지고등학교부터다. 

첫 월급 30만원에 아이들과 같이 살고, 직접 삽을 들고 공사도 해야했던 조건. 20대의 미대 졸업생은 그 길로 대한민국 대안교육의 역사가 된다. 그때 대안학교는 이른바 문제아들이 오는 곳이어서, 전과있는 아이들도 많았고 그만큼 사고도 많았다. 그때 생각해낸 소통과 성취감의 도구가 바로 인형이었다.  

“방문 열고 꼬무작꼬무작 인형을 만들었더니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라고요. 바느질을 함께 하면서 속 이야기를 나눴죠. 그래서 성지송학중에는 테디베어반이 있었어요.”

그 시절 아이들을 위로하던 인형은, 훗날 그의 힘든 시절을 보듬었다. 신심으로 한 땀, 효심으로 한 땀, 그렇게 손뜨개 십상을 완성한 구 교도가 전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마음이다. ‘이 거칠고 어려운 시절, 늘 고요하며 다정한 인형처럼 은혜가 함께하기를. 그렇게 감사 가득한 일 년 열두 달이 되기를.’

[2023년 9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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