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 
아랫세대에 대한 불신과 걱정, 채근은 기원전 17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견된다.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마르틴 루터(1483~1546)도 독일의 대학도시인 에어푸르트에서 공부할 때 방탕한 도시 분위기를 보고 “소돔으로 전락한 로마를 따라간다”고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TV쇼나 유튜브, 언론을 통해 소위 ‘요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만날 수 있다. 근무 중에 무선 이어폰을 사용한다든지, “이걸요? 제가요? 왜요?”의 3요 주의보 등 미디어를 통해 “요즘 것들은 자기주장이 강해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않으며, 기존 상식과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그들이 가진 장점보다 극단적인 단점들을 꼽아가며 비판하는 모습이다. 이런 전방위적 비판과 배척 때문일까. 기성세대와 사회가 이해해주지 않고,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요즘 세대 청년들에게 붙여진 또 다른 수식어에는 ‘패배주의’, ‘소외’ 등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 속 ‘요즘 것들’이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다’이다. 현실의 많은 요즘 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환경에 감사할 줄 알고, 본인이 필요한 역할은 없는지 찾는다. 마치 ‘주인’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애정을 갖고 자기와 공동체의 발전을 꿈꾸기도 한다. ‘내가 내 삶의, 내 일의 주인공이다’는 당찬 마인드로 임하는 것이다. 또 이들은 디지털 세계와 함께 자라온 만큼 기성세대가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기존의 것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기도 한다. 

우리 조직에서 함께하는 젊은 재가직원들을 통해 이런 감상에 확신을 얻는다. 이들은 “제가 해볼게요”, “도와드릴 거 없나요?”, “이건 이렇게 해보면 좋겠어요” 등 교단 안에서만 성장해온 기자의  시각을 벗어나는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진보적인 추진력을 보여준다. 교단을 단순한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커나가는 공동체’라 여기며 힘을 보탠다.

물론 이들이 교단 곳곳에서 샘물처럼 활동할 수 있는 데에는 그 뒤를 지지해주는 ‘리더’의 자세가 큰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구성원을 이해하고 키워내려는 리더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일단 작게라도 해보게 한다. 그리고 넘치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을 통해 얻은 경험에 바탕해 진심으로 조언해준다. 또 맡긴 일이 실패했을 때 무너지지 않도록 리더가 먼저 나서 책임의 무게를 함께 부담하며 든든한 플랫폼이 되어준다. 

나와 조직을 돌아보자. 가까운 데 어떤 훌륭한 ‘요즘 것들’이 숨어있는지, 스스로가 이들이 믿고 활약할 충분한 플랫폼을 갖춘 리더인지.

[2023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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