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9월 22일, 퇴임한 원로교무 네 사람이 마련한 장학금 3억 원이 교정원 교육부로 전달됐다.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전달한 이들은 박혜원·박은원·박도원·박인원 교무로, 넷은 자매지간이며, 희사금은 네 자매 교무들의 전 재산이었다. 

“지도자로서 역량 있는 교무들이 더 폭넓고 심도 있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데 힘을 보태주고 싶었습니다.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석학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질 높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후진들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오직 교단을 이끌어갈 미래 후진 양성만을 기대하며 내린 결정, 네 자매는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들이 보여준 환한 미소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모습이 가득 담겨 있었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비 보살의 얼굴이었다. 교육부에서는 이를 ‘간타원 혜원 장학금’으로 명명하고 석·박사과정을 희망하는 전무출신에 대한 교육 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다.
 

치병 생활을 위해 받은 보험금, 모두 교육부에 희사 
“서로 아픈 몸이라, 오히려 더 이해하며 돕고 살아”

생명 담보로 받게 돼, 함부로 쓸 수 없다
간타원 혜원 장학금에는 네 자매 교무의 아픈 사연이 들어있다. 이 교무들이 희사한 장학금은 치료와 정양을 위해 받은 보험금인 것. 네 자매 중 셋이 암에 걸려 큰 수술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암 치료와 함께 요양을 위해 보험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수령하고 모아보니 큰돈이 됐고, 이들은 용처를 고민하다가 결국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에 희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생각해 보면 생명을 담보로 모인 돈이잖아요. 그래서 함부로 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마련된 돈이라면 나 하나를 위해 쓰기보다는 더 값있게 뜻있는 곳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민하게 됐고, 의논한 결과 지금과 같은 결정을 했습니다.”

이들은 받은 보험금에 세간 형제와 이모에게 받았던 후원금, 그리고 동지들이 손을 보태 마련해 준 정양비 등을 더해 3억원을 준비할 수 있었다. 몸이 아프고 요양 생활도 어렵지만, 후회 없는 선택에 뿌듯했다. 또한 앞으로 교단을 이끌 후진들을 길러낸다 생각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평생을 교단에 헌신하고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이 같은 결정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고, 다시 크게 보은을 할 수 있는 기회에 행복했다.

“함께 의견을 냈지요. 희사해서 장학회를 만들면 좋겠다고요. 후진들을 길러내는 데 쓰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매사 과한 것보다 부족함이 낫다
결코 부유해서, 생활이 넉넉해서 희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경제생활을 겪었고, 누구보다 부족함이 무엇인 줄 잘 알고 귀한 줄 알기에 선뜻 희사할 수 있었다.

맏언니인 박혜원 교무가 대산종사의 법문 한편을 인용했다. “항상 중심을 잃지 않고 두루 살피고, 정성으로 하되 어쩔 수 없다면 진리에 맡기고, 매사에 과한 것보다는 부족한 것이 좋다고 말씀했죠. 늘 반조하는 법문입니다.”

오히려 부족함 속에서 넉넉함을 챙기며, 정성을 다함과 동시에 진리에 맡기는 삶, 그렇게 중심을 잃지 않고 지금껏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건강도 경제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직 공중사에 다 맡기고, 진리에 다 맡기는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 터.

처음 박은원 교무에게 암이란 병이 찾아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맏언니인 박혜원 교무도 암이 발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인원 교무에게도 암이 찾아온 것이다. 또한 박혜원 교무는 처음 발병한 암이 다스려질 무렵, 또 다른 암이 생겨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진리에 다 맡겼다. 생사조차도. 그렇게 병마를 이겨내는 시간 동안 셋째 박도원 교무의 희생이 무척 컸다. 하지만 그런 경계 속에서도 교무들은 교도들에게 아픈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박인원 교무가 마지막 근무지인 어양교당을 떠날 때까지도, 박혜원 교무가 서울교당을 떠난 지금까지도, 교당 교도들은 이들의 병고를 알지 못했다. 

이들 자매 교무는 현재 익산에 조그만 숙소를 마련해 함께 생활한다. 병고를 치렀던 세 자매가 이곳에서 정양하고, 동산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박도원 교무가 자주 들러 살피는 것이다.

“서로 아픈 몸이라, 오히려 더 이해하며 돕고 살아요. 더 의지가 되고, 함께 생활하니 큰 힘이 됩니다.” 

병마로 가장 고생이 많았던 넷째 박인원 교무는 아픈 두 언니 교무에게 유난히 미안함이 더 크다. 같이 아픈 몸인데도, 자신의 병간호로 고생이 너무 많아서다.

과한 것보다는 부족함이 낫다는 표준을 지켰던 삶으로, 네 자매 교무는 마지막까지 ‘전무출신’이었다. 장학금 전달식으로 가진 것은 모두 내놓고, 표준 잡은 법문처럼 이제는 진리에 모든 것을 다 맡기며 오직 정성으로 공부하며 살아갈 뿐이다.

“오직 도방하(都放下)하면서 지내려 합니다. 욕심 없이 수양하면서 여여하게 말이죠. 더 아프면 안 되니 건강 잘 지키면서 기도 생활로 일관하려 합니다. 영생을 두고 이 공부 이 사업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2023년 9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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