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일 년에 둥근 달은 몇 번 뜰까요? 이런 쉬운 넌센스 퀴즈에도 곧잘 넘어가는 이들이 있다. 둥근달을 보름달로 착각해 아무 의심 없이 일 년 12달이니 12번이라고 답한다. 답은 ‘365일 언제나’다. 답을 알려줘도 바로 못 알아듣는 게 순진한 이들의 특징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아하, 그러네!’ 하고는 도통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달은 언제나 둥글다.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달에 한 바퀴 돌 때, 태양의 빛이 비치는 부위에 따라, 지구에서 보면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하고, 혹은 절반만, 혹은 전체가 보이기도 할 뿐이다. 달 자체는 일 년 365일, 밤이나 낮이나 늘 둥글게 떠 있다. 

흔히 성품을 마음달로 비유한다.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는데 천 강에 비치면 천 개로 나타나듯, 본래 성품은 하나인데 일만 경계를 당하면 일만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천이나 만은 숫자가 아니라 일체를 뜻한다. 천 강에 비친 달이 참 달이 아니라 허공 달이 참 달인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천만 경계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참 마음이 아니라 본성이 참 마음이니 참마음을 찾으라는 의미다. 

본래 청정한 성품 하나가 우주를 성주괴공으로, 만물을 생로병사로, 천지를 춘하추동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주인공이다. 허공 달은 주인공인 성품을 말하며, 천 강에 비친 달은 성품이 드러나는 일체의 심신작용과 삼라만상을 비유한다. 하나의 허공달이 참 달이며, 천 개의 강에 비쳐 나타난 천 개의 달은 실체 없는 그림자이지 참 달이 아니다. 
 

참 공부인은 경계 속에서
실력을 단련한다.
자성반조를 놓지 않고
365일 언제나 둥근달로 지낸다.

여기서 자칫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비유의 오류가 있다. 강에 비친 달은 참 달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강에 비친 달, 경계에 작용하는 모든 마음 역시 진리이자 부처다. 진공으로 보면 허공달도 실체가 아니라 공한 것이요, 강에 비친 달도 공하며, 묘유로 보면 허공달도 강에 비친 달도 다 묘유다. 본래 성품도, 드러난 심신작용도, 우주만유도 다 진공묘유의 진리의 모습이다. 

일체가 부처이며 부처의 작용이니 정확히는 강에 비친 모든 달이 참 달이며 다 둥근달이다. 둥글게 생겼든 반쪽이든 찌그러졌든 다 부처이며,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다 부처의 작용이니, 일체가 허공달이고 둥근달이며, 본래 온전하다. 자성의 생생약동하는 모습인 경계를, 좋거나 나쁘다고 해석하는 분별망상이 도둑이지, 경계 자체는 아무 문제없는 중립 상태다.

일체의 달은 참 달이고 언제나 둥글며, 어떤 모멸과 어떤 상황에 처해도 위대한 전지전능한 신인 그대는 털끝 하나 상하거나 쪼그라들지 않는다. 오직 깨달음을 얻어 일체가 부처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즉 괴로움을 벗어날 힘이 있는가 없는가만 중요하다. 

참달 자성을 발견해 일체 처 일체 시에 늘 둥근달 자성을 비추고 살면, 비가 와도 태풍이 불어도, 밤에도 낮에도 언제나 여여하다. 참 공부인은 경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경계 속에서 실력을 단련하며, 자성반조를 놓지 않고 365일 언제나 둥근달로 지낸다.

달을 보는 이들이 시공을 초월해 하나의 달을 보듯, 늘 자성을 떠나지 않고 비추며 사는 이들은, 하나의 자성에 머무니 심월상조(心月相照), 마음달로 서로 비추는 자리에서 심심상연한다.

마음 찾는 주인공들이여! 제일 먼저 보고 소원 빌어야 이뤄진다고 보름달만 기다려 찾지 말고, 본성마음 마음 달 발견하도록 간절히 빌어봄이 어떠신가. 

/변산원광선원

[2023년 9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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