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호 교무
박윤호 교무

[원불교신문=박윤호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으로 개교를 했다. 생일도 아니고, 방언조합 설립일도 아니고, 불법연구회 창립총회일도 아니고, (재)원불교 설립인가일도 아니다. 오직 당신의 깨달음으로써 회상의 시작을 알렸다. 이는 당신의 깨달음을 비롯해 만중생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열어줌이 됐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표본을 제시했다.

만일 깨달은 바를 산문으로 서술한다면 구구한 표현으로 언어도단 심행처멸의 자리를 장엄함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면 도리어 본지풍광(本地風光)과는 멀어졌을 텐데 온통 운문(韻文)으로 표현해 줬다. 운문이란 무엇인가. 압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깊고도 넓은, 의미를 읽는 이로 하여금 짧고 간결하게 느낌으로 전해주는 문장이다. 따라서 당신의 심지(心地)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해서 한눈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대각의 요지(要旨)는 <대종경> 서품 1장에 말씀했으되 그 심경(心境)은 성리품 1장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또한 대각 전후의 마음 자취에 대해서는 <선외록>에 실린 ‘탄식가’로써, 대각 이전에는 깨달음에 대한 갈급증으로 탄식하고 대각 이후에는 깨달은 심경을 함께 나눌 이 없어 안타까운 탄식을 했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신 
소태산 대종사의 심경…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

단 열 글자로 채워진 성리품 1장 시구는 자연물로써 성품의 이치와 원리를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감상하는 인간의 감정을 다룬 수많은 시구와 다르게 주어는 시의 화자가 아닌 삼라만상이다. 때는 달이 떠 있는 밤중이고 아마도 구름이 끼어 달빛 별빛도 가늠하기 어려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이다. 그러나 한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걷어내고 보니, 바람 이전에도 바람 이후에도 교교(皎皎)히 빛나던 그 달빛이고 별빛이다. 

만상은 또 어떠한가. 구름의 유무와 관계없이, 더 나아가 해달별, 하물며 밤길을 걷는 길손의 촉등 하나 비춤이 있든 없든 늘 그 자리에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로 전개돼 있었다. 그러니 달빛도 늘 보던 그 달빛이요, 만상도 늘 마주하던 그 만상이었다. 다만 보는 이의 가리움, 즉 구름의 유무로 인해 어둠도 되고 미혹도 되고 마는 것이다.

만상이 저절로 있었으니 기실 명(明)할 것도 암(暗)할 것도 없으나 달 위에 청풍이 더해지니 역력한 밝음을 또한 나투게 되어 이를 강연히 깨달음이라 이름했으리라. 즉 깨달음이라 하는 것도 없던 것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병진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본래 깨달은 상태라 이를 본각(本覺)이라 한다. 그러나 방편을 따라 수행의 공(功)을 이룬즉 달빛이 청풍을 만난 것과 같아서 이를 깨달음을 열어간다 하여 시각(始覺)이라 이름했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 대각하신 날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고생이 괜한 일이 아니던가’ 하며 손발톱 소제와 두발 정리부터 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체성을 마주하지 못한 중생의 견지에서는 “대각 이전의 소태산 대종사는 중생인가?”와 같은 우문(愚問)도 해볼 법하다. 여기에 일생 익살을 잃지 않고 여유만만 하던 우리의 석두(石頭)거사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일원상을 체받아서… 운운(云云)”

길룡리 영촌의 산하(山河)는 광겁의 긴 세월에 춘하추동과 주야를 구분 없이 그대로 밝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밝히고 있을까. 밝기는 밝은가? 어둠 속에 만상을 더듬고 있지는 않은가? 소태산 대종사 열반을 앞두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는 회상 여는 일을 안해야겠다. 몇 생 쌓은 정력(定力)이 다 소비되고 말았다. 이젠 신명(神明)도 지각(知覺)도 다 막히었다. 먼 수행길을 떠나련다.”

/김화교당

[2023년 9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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