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멍때리기’, 현대인에게 익숙해진 마음치유요법
물멍·숲멍·꽃멍… ‘좋아하는 곳에서 마음 멈춰보기’
종교가 “여기 좋은 멍플있다”고 손 내밀어 볼 수도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2014년 10월,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50여 명의 사람들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참여형 퍼포먼스 예술작업을 진행하는 ‘웁쓰양’이 연 제1회 멍때리기 대회였다.

이처럼 멍때리기는 처음에는 예술의 일종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멍때리기로 뇌의 자극을 없애면 뇌 활성화, 창의력, 문제해결능력이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최근에는 바쁜 일상과 경쟁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효과 있는 마음치유요법으로 접근되고 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멍때리기가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멍때리기 좋은 ‘멍플레이스(멍+플레이스)’도 SNS와 미디어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다. (마음) 공부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 우리는 어디로 멍을 때리러 가볼까.
 

법기수원지
법기수원지

‘고요’와 하나 되는, 물멍
캠핑족들이 주로 했던 ‘불멍’은 멍때리기 방법 중 하나로 유명세를 탔다. 오죽하면 실내에서도 불멍을 할 수 있는 제품들이 출시됐을 정도다. 그러나 직접 불을 피우고 치워야 하는 불편함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면서 불의 반대인 ‘물멍’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물멍하기 좋은 멍플은 전국 각지에 있지만, 이번에는 경남 양산의 ‘법기수원지’를 소개한다.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법기수원지는 경남과 부산 동북부를 맡는 상수도원의 수원지로, 청정한 곳으로 유명하다. 축조된 지 80여 년 만인 2011년에야 대중에게 그 천혜의 자연을 공개했는데, 수원지 입구에는 그동안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자라난 개잎갈나무와 편백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있다. 

이들을 지나고 높은 둑을 오르면 만나는 거대한 저수지. 수원지 주위 산들이 마치 저수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산과 물, 이들이 전하는 감상은 ‘고요’. 먼 산에서 들리는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나’의 소리만 남는다. 여기서 ‘나’마저 소리를 내지 않으니 저절로 고요와 하나가 된다. 고요와 하나 되어 수면을 바라본다. 수면과 나의 마음이 닿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수면 여기저기가 일렁인다. 하지만 금세 잔잔하게 제자리를 찾는다. 한번 일어나면 여기저기서 더 크게 끓어오르는 현대인의 마음과는 다르다.
 

홍룡 폭포
홍룡 폭포

비경 속 신선 체험, 폭포멍
잔잔한 물을 바라보며 때리는 물멍과는 달리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는 물을 바라보는 ‘폭포멍’이 있다. 소개할 곳은 법기수원지에서 20여 분 거리에 자리한 홍룡폭포다. ‘신선도 반할 비경’이란 이명을 지닌 홍룡폭포는 경남 양산 천성산의 홍룡사와 함께 있다. 홍룡사는 폭포와 함께 있어 ‘낙수사’라고도 불렸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유명하다. 
 

홍룡 폭포
홍룡 폭포

사찰 옆 돌계단을 오르면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관음전, 약사여래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 셋이 함께 있는 신비로운 풍경에 ‘여기가 도원경인가’ 싶다. 떨어지는 물이 돌과 부딪히며 하얀 꽃처럼 피어나고, 관음전에서는 은은한 향내가 풍기고 독경소리가 들린다. 폭포를 마주하고 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데워진 몸을 식혀준다. 멍때림으로 뇌가 맑아진 탓일까. 물과 돌이 만든 백화(白花) 뒤로 산수화가 그려진다. 하얗게 떨어지는 물은 선이 되고, 까만 돌은 명암이 된다. 보기에도 넉넉한 포대화상과 소담한 산세가 그려지는 듯하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폭포멍을 하고 싶어 관음전에 오른다. 관음전 중앙에 앉으니 문이 하나의 프레임이 된다. 네모난 프레임에 홍룡폭포와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께 이곳에 오른 방문객들은 “거리가 있어 자주 오긴 힘들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라고 감상을 전했다.
 

홍룡 폭포
홍룡 폭포
아홉산숲
아홉산숲

몸과 마음 깨워주는, 숲멍
물멍·불멍이 가만히 대상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방식이라 한다면, 숲멍은 걷고 느끼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깨운다. 숲멍을 위해 찾은 부산 아홉산숲. 아홉산숲은 한 집안에서 400년 가까이 지키고 가꿔온 숲이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기를 지나 21세기에 들어서도 절대 개방하지 않고 그 생태를 지키고 가꿔오다가 2015년 ‘인간과 자연의 화합공생’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오랜 시간이 담긴 죽림과 금강송림, 편백나무 등이 구획 별로 조성된 아홉산숲은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걸으면서 나무 냄새와 흙냄새, 새소리와 벌레 소리에 마음을 담아보기도 하고,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 앉아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떻게 이 긴 시간 동안 숲을 지켰을까.’ 대를 이은 선의(善意)를 짐작해보기도 하고, ‘산 아래 세상을 나무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하는 의문도 굴려본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이 담긴 공간에서 ‘시간’과 ‘나’라는 존재에 깊게 잠겨본다.
 

아홉산숲
아홉산숲
아홉산숲
아홉산숲
아홉산숲
아홉산숲
상사화 축제
상사화 축제

더 좋은 멍플
앞서 여러 가지 멍때림을 소개했지만, 사실 멍때리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마음을 멈추는 일이다. 그래서 ‘꽃멍’도 가능하다. 원예치료의 방편으로도 이용되는 꽃멍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멀지 않게 시도해볼 수 있다. 지역별 꽃 축제나 거리마다 조성된 화단, 혹은 개인이 직접 키우며 멍때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계절이 담긴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이하 상사화축제)를 소개한다. 세계 최대의 상사화 군락지에서 펼쳐지는 상사화축제 현장은 눈 닿는 곳마다 붉은 융단에 둘러싸인 듯, 어딜 봐도 꽃천지다. 꽃과 꽃 사이 자란 나무가 만든 잎새 사이로 빛이 비치는 모습은 해와 바람, 구름과 나무, 꽃밭이 하나가 돼 대자연이 선보이는 ‘미디어아트’처럼 보인다.

경쟁 일변도의 현대사회, 멈추지 않고 쌓이는 스트레스가 빚어낸 여러 사회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건강’에 주목하게 한다. 

그 방편으로 큰 관심을 받는 ‘멍때림’은 어찌보면 종교에서 오래 실천해온 수양 법의 ‘MZ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치유와 발전을 위해 스스로 멍플을 찾는 현대인에게 종교는 ‘더 좋은 멍플’을 어떻게 제시해볼까.
 

상사화 축제
상사화 축제

[2023년 9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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