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원기1), 소태산 대종사 표준제자를 정하다

소태산 대종사와 9인의 표준제자 초상화(범해 김범수 作)
소태산 대종사와 9인의 표준제자 초상화(범해 김범수 作)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가장 큰 변화는 병색(病色)이 사라져 얼굴에 광명(光明)이 어려 있는 것이었다. 또한 말과 행동이 범인으로는 측량하지 못할 정도로 변모하여 보는 사람의 정신이 황홀하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생각하기를 ‘나의 아는 바는 곧 도덕의 정체(正體)이요, 나의 목적한 바는 곧 도덕을 이 세상에 창건하여 고해에 빠진 일체중생을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바가 아닌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문(道門)을 열 만한 기초가 갖춰져 있지 못하여 방편치성(方便致誠)으로 따르는 40여 명을 얻었다. 그들 중 진실하고 신념이 굳은 8인을 깨달음을 얻은 그해 12월경(음)에 표준제자로 내정하였다. 그 8인은 이재풍, 이인명, 김성구, 오재겸, 오내진, 박한석, 유성국, 김성섭이었다. 


1917년(원기2), 시방세계 모든 사람을 통치 교화할 10인 1단 조직법인 첫 교화단을 표준제자 8인으로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예회 실시와 ‘성계명시독(誠誡名時讀)’으로 신성(信誠)의 진퇴와 실행의 시비를 대조하게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처음 8인의 제자로 8방을 정하고 교화단 중앙은 비워 두었다. 앞으로 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임시로 오재겸에게 대행하게 하였다. 


그 후 경상북도 성주 사람인 송도군을 맞아들여 중앙에 임명하였다. 송도군은 후에 법명을 ‘규(奎)’로, 법호를 ‘정산(鼎山)’으로 받고 소태산 대종사의 법통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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