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살아야 교회도 산다’… 마을목회로 지역사회와 호흡
‘성장’ 좋지만, ‘성장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
지역과 마을에 필요한 것 살피는 마음이 목회자의 기본이어야

‘나를 부르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
농촌 생활의 시작은 목사가 될 때 새긴 마음에서 비롯됐다. 서울 출신인 자신에게 친구 목사가 “농촌에서 막 시작된 교회가 있는데 가 볼 생각 있냐”고 물었을 때, 자연스레 ‘그 한마음’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니 기꺼이 향했다. 본래 서울 출신인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 아주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교회라고 해봐야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7평 남짓한 한 칸이 예배 공간의 전부였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목사로‘만’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농부가 되어 흑미 농사, 수세미 농사를 지었다.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 수 있을까.’ 그의 지난 20년을 관통한 한 생각은 그를 귀농귀촌 전문가, 마을만들기 기획자 등으로 성장케 했다. 이에 그는 2016년부터 ‘마을목회연구소’를 통해 농촌에서 목회자로 살아가며 느끼고 경험하고 얻은 것을 더 많은 목회자와 나누는 역할을 자처한 참이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는 오롯한 의지, 오필승 목사(마을목회연구소 소장, 신동리교회 담임목사)의 이야기다.


마을목회연구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마을목회연구소는 마을목회·마을목회신학을 연구하고, 마을목회 확산을 위해 마을목회자들을 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마을목회는 2015년에 제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저는 이 말의 뜻을 ‘목회자와 교회공동체가 마을공동체를 해치지 않고 마을의 전통을 잇고 마을에 사는 주민의 일원으로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깨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서로 존중하는 목회’라고 정의해요.”

이어진 설명에서 오 목사는 “그동안 성장주의 목회는 주로 마을사람들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삼아왔다”는 솔직한 고백을 더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마을목회란, “이를 반성하고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으로 마을사람을 섬김과 봉사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평화를 이뤄가는 목회”다. 농촌 마을이 사라지고 소멸되면 농촌에 있는 교회도 문을 닫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는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일’을 곧 ‘하나님이 이곳에 나를 보낸 이유’로 여긴다고 말했다.

농촌의 기획자이자 지도자로 역할 하고 있는데요.
“2003년 11월에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농촌 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감소할 텐데, 이런 농촌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답은 찾지 못한 상태로요. 그러다 ‘그동안은 농사를 무턱대고 지었는데 어디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면 배워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보를 찾다가 충청남도 농업기술원 귀농대학 1기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전북 진안 견학에서 농촌 살리기에 대한 답을 얻었죠.”

‘이거다!’ 무릎을 친 그는 ‘앞으로 농촌은 이렇게 되어야겠다’는 청사진을 귀농대학 수료 시 네 가지 계획으로 구체화했다. ‘첫째, 홍성군에 귀농귀촌인 모임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홍성군을 만들겠다. 둘째,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를 하겠다. 셋째, 체험농장·체험마을을 만들겠다. 넷째, 마을박물관을 만들겠다.’ 개인 오필승이 아니라, 농촌에 온 목사 오필승으로서 마을과 지역이 함께 살 방법을 연마한 결과였다. 그렇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그의 계획은 모두 실현 된다. 그리고 ‘추천’에 의해 이장도 9년이나 하고, 최근에는 홍성군마을만들기협의회 회장도 맡게 됐다. 모두 지역민들이 먼저 요청해 이뤄진 자리였다.
 

오 목사가 마을 정자 ‘희우정’(喜雨亭, 비 내림을 기뻐한다는 듯)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오 목사가 마을 정자 ‘희우정’(喜雨亭, 비 내림을 기뻐한다는 듯)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마을 안에서 하던 일들을 교단적으로도 확대했는데요.
“네 가지 계획을 실현하다 보니 ‘전국의 농어촌 지역이 같은 상황일 텐데, 목회자들이 각자의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이나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그래서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약칭 예마넷)’을 제안하게 됐고, 마을만들기와 귀농귀촌관련 사업들이 예장통합 교단적으로 확대됐죠.”
2015년 신동리교회는 예장통합 교단 내에서 1호 ‘귀농귀촌 상담소’를 연다. 그리고 총회 농어촌 선교부에 “앞으로 2호, 3호, 4호의 귀농귀촌상담소가 필요하다. 총회 농어촌 선교부가 세미나를 열고, 각 지역의 교회들이 귀농상담소를 열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은 지금까지 8차례 진행됐고, 200여 명이 교육을 받았으며, 20개의 교회가 귀농귀촌상담소를 열었다. 각 지역에서 교회(종교)가 해야 할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다.

교회가 농촌 살리기에 함께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교회든 불교든, 도시든 농촌이든, 사람이 사는 곳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종교의 존재 목적이어야 한다고 봐요. 그러기 때문에 ‘살리기’에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또 지금 세상은 분열이나 다툼이 팽배하고, 전쟁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세상이 되고 있어요. 이런 세상에서 종교의 중요한 역할은 결국 ‘평화와 공존’이죠. ‘죽음’을 ‘살림’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은 종교와 종교인은 물론이고,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도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에요.”

종교의 미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교회를 예로 들면 1970~1980년대에 계속해서 성장하고 교세가 늘어나면서, 또 부를 축적하고 개교회주의가 확대되면서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성장’에 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후배인 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보고 배우며 자랐죠. 성장 자체는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라고 봐요. 종교는 이웃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데, 그동안 조금 나누고 베푼 것으로 자기 위로와 과시를 해온 것 같아요. 원래의 종교 모습을 찾아가는 그런 종교, 그런 종교지도자가 필요해요. 그러지 않으면 종교의 미래는 암담 할 거예요.”
 

종교들이 각 마을(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노하우를 전해주세요.
“기독교든 불교든, 그 지역과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해요. 그것을 아는 게 선교사 또는 포교자(교화자)의 기본 마음이 되어야 하죠. 그 마음을 가지고 마을과 사람을 보면 우리가,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보여요. 종교는 결국, 마을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마을과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고, 이들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해야해요.”

오 목사는 <마태복음> 7장 12절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를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꼽았다. 그런 그에게는 ‘반드시’ 변화될 마을, 변화될 농촌의 모습을 그려가며 꿈꾸는 것이 늘 가장 큰 원동력이다.
 

마을목회연구소를 겸하는 신동리교회는 맞배지붕 형태의 한옥이다.
마을목회연구소를 겸하는 신동리교회는 맞배지붕 형태의 한옥이다.

[2023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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