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인 교도
나경인 교도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아이가 생후 10개월이 됐을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차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카락이 빠졌고, 2차는 손·발톱이, 3차 때는 피부가 벗겨졌다. “옆에서 보는데 작은 아기가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당시의 둘째아들 모습을 회상하던 나경인 교도(영광교당)이 먹먹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이가 혹 열이나면 한 사람에게 (일반헌혈보다 엄격관리 된) 특수헌혈을 받아요. 그럼 아이가 하루를 더 살수 있어요.” 허나 한 사람은 딱 한 번의 기증만 가능한 상황. 혹 기증자에게 작은 상처가 있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의사가 사람을 구해오라는데,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죠.” 그 뜨겁고도 고통스럽던 시기의 나 교도 가족 곁에는, 원불교가 있었다.

“일단 교당으로 갔어요. 상황을 말씀 드렸더니 교당 교무님들이 한달음에 병원으로 와주셨어요.” 그 움직임은 큰 시작이 됐다. 하루는 소식을 들은 예비교무들이 검사를 받으러 왔고, 또 하루는 이름도 모르는 교무들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제일 좋은 기증자는 군인이라고 했다. 사회와 격리돼 오염이 적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태평양 건너 LA교당 교무님 지인의 인연으로 알게 된 한 부대에서 기증을 받게됐어요.”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은 아이의 하루하루가 되었고, 그 일심합력으로 병을 완치한 아이는 어느덧 13살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다 은혜였어요.”

고등학생일 때부터 원불교의 인과를 어머니에게 배운 나 교도. 그의 입은 감사를 습관처럼 내뱉는다. “나쁜 일도 좋게 보면 나중에 감사로 돌아오는 것을 배웠죠.” 아이의 투병 이후 원망을 감사로 돌리는 법도 알게 됐다. 그는 그 돌려받은 감사의 한 예로 아내를 꼽는다.

그와 결혼하고 입교만 했었던 아내. 교당을 함께 다녀오던 어느날 아내는 “아는만큼 보인다던데 나는 모르니까 도통 모르겠어”라고 하더니 공부를 시작했다. “2년 동안 원디대 원불교학과도 다니고 강의도 찾아 들으며 교전도 열심히 독파하더니 이제는 원불교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아요.” 처음에는 남편 없으면 교당에 가지 않던 아내는 이제 그가 결석하는 날이면 설법을 요약해 전해주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아내 앞에서 원불교 얘기를 쉽게 못한다니까요(웃음).”

어머니를 따라 입교한 처음부터 (원불교) 가르침 따라 꾸준히 걷다 보니 지금처럼 감사한 오늘을 맞이하게 됐다. 감사를 인과의 선순환이라는 나 교도. 그의 가족은 그렇게 손에 손을 맞잡고 감사라는 원을 그리며 산다.

[2023년 10월 1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