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전 교무
박경전 교무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그는 ‘우리 교단에는 훌륭한 선진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후진들이 그 선진을 만난 적도, 시간을 내 알아볼 자료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대산종사를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알 수 있게 된다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을 구상했다. 벌써 25년이 됐다고 했다. ‘대산 김대거 종사 전기소설’인 <활불의 시대> 저자 박경전 교무(상당교당)와의 대화는, 무진(간사)의 삶을 교차해 선진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로 시작됐다.


전기소설을 쓰게 된 동기
“대산종사를 모시고 간사 생활을 했다. 교단적으로 큰 스승님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은혜를 많이 입었다. 대산종사께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함부로 대산종사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내 글이 오히려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언젠가 역량이 되면 글을 써야겠다던 차에 기회가 생겼다. 한 달간 (모텔) 달방을 잡고 밤낮없이 글을 썼다. 부족한 점이 많고 혹시라도 잡음이 생길 것을 우려해 전기이지만 소설 형식을 택했다.”

옴니버스 형식이 주는 의도
“일반적 전기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든 독자가 흥미를 갖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또 교단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대산종사와 가장 말석이라고 할 수 있는 간사의 삶을 교차하면서 본질의 공통점과 외연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싶었다. 목적은 제목이다. 공부하고 있다면, 노력하고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활불이다.”

영호(소설 속 대산종사의 호적명)의 메시지에 담긴 시대적 의미
(영호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횃불 싸움을 멈추게 했다. ‘늘 했다고 할 필요는 없어. 잘못된 건 고치는 게 맞아’라는 영호의 메시지)
“어느 시대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시대에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더 나은 무엇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산종사는 실천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무엇도 그 시절엔 다른 무엇을 고친 것이다.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단, 교조와 교리의 본의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법문은 들은 사람의 기억이고 편집이다. 
본의와 대의를 짐작해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여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한 소태산의 뜻
“마음속에 하나가 크게 자리를 잡으면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에만 집중된 마음은 그것이 무엇이든 위험하다. 실제 대산종사는 편수(片修)를 가장 경계하셨고 간사인 나에게도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산종사에게 원만구족한 마음을 요구하셨을 것이다.” 

소년과 대산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어느 정도 픽션(Fiction)인지 궁금하다.
“픽션과 논픽션(Nonfiction)의 경계에 있다. 내가 직접 받든 말씀도 있고 대산종사의 법문들을 종합해 추론한 것도 있다. 교단 일부에서 어떤 주장을 할 때 ‘대산종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찾아보면) 다르게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법문은 들은 사람의 기억이고 편집이다. 본의와 대의를 짐작해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그 말씀을 무기로 주장을 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소년과 대산의 대화는 내가 법문을 읽고 추려낸 대산종사의 본의와 대의다.”
 

일명 ‘초코파이 사건’ 이후 간사 무진은 순탄치 않은 방황을 했다. 그때의 무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코파이 사건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소녀도 네 책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덧붙여 무엇 하나 걱정 없이 맑고 밝게 웃는 그 누구도 네 덕분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여 있고 하나이기에 자비심이 필요하고,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자비심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생존인에 대한 법강항마위 수여에 관한 여론을 책 속에서 정식으로 노출시켰다. 
“우리는 수행자이고 공부인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시선은 안으로 향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법위를 받았다’고 말한다. 본인 판단일뿐이다. 본인 판단이 옳다고 어떻게 믿는가? 시선이 안으로 향해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본다. 자신이 지금 법위에 맞는지. 맞지 않는다면 더 노력할 것이고, 맞다면 맞는 대로 더 노력해서 법위를 올리려 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법위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만 고민하고, 나 자신이 법위에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뒷이야기
대산종사는 그에게 어떤 성자로 기억될까. 그의 대답이다. “나의 생각임을 전제하고 말한다면, 대산종사는 활불이다. 직접 활불임을 보여주고 활불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분이다. 대 실천가, 대 지도자, 대 정치가였던 대산종사처럼 대(大)자가 잘 어울리는 분도 없을 것 같다. 대(大)는 소(小)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小)를 품은 대(大)이다. 그처럼 많은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셨으니 유무(有無)도 포함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산종사는 소(小)와 유무(有無)를 품은 분이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교단 문학의 외연 확장을 위한 작품 하나와 성직자(교무)의 기숙사 생활을 담아낸 책이다. 그만의 독특한 비법으로 매운맛 잘 어우러진, 입맛 당기는 맛깔스러운 작품이 기다려진다.

[2023년 10월 1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