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관 교도
여도관 교도

[원불교신문=여도관 교도] 며칠 전 재산세를 납부하기 위해 국세청에 접속했다. 지난해보다 엄청나게 줄어든 세액을 확인하니 당장은 마음이 편했지만 이렇게 세금을 걷으면 나라 살림은 부족하지 않을지, 복지가 필요한 약자에게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밀려왔다.

대부분의 사적가치는 공적자원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부동산 가격은 공적자원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도로, 지하철 같은 교통기반시설, 훌륭한 교육기관, 최고의 의료시설, 촘촘한 치안센터, 녹지, 공원 같은 쾌적한 자연환경 등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은 거의 공적자원이다.

또한, 쓰레기 매립장, 화장터 같이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혐오시설이 들어서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도 공공 차원의 결정이다. 그런 이유로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치는 절대 사적(私的)이지 않다.

지역의 공공 인프라와 부동산 가격을 비교해 보면 공공자원의 편중이 부동산 가치의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강남구에는 지하철 2·3·7·9호선, 신분당선, 수인분당선 여섯 개 노선이 지나고, GTX 2개 노선과 위례신사선 건설이 예정되어있다. 심지어 경부고속도로와 고속철도(SRT)도 강남구에서 시작하니 이정도면 세계 최고의 교통망을 갖췄다.

사회간접자본(SOC)는 직접적인 생산수단은 아니지만 경제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반시설이다. SOC 구축에는 막대한 건설비와 유지비가 투입된다. 가정과 산업체로 전기와 수도를 공급하는 것에서부터 시민들을 편하게 이동시키는 지하철, 원자재와 상품을 실어 나르는 도로, 철도, 항만 등은 공적 합의를 거쳐 국가나 지자체가 구축한다.

시민들에게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건강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공원, 도서관, 생활체육시설을 조성하고 오페라 하우스 같은 대규모 문화시설을 만드는 것도 SOC 사업이다. 이렇게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수익을 낼 수 없는 부문도 SOC에 포함된다.  
 

인과를 알면 이치로 보고 
인과를 모르면 집착으로 본다.

선진국일수록 기업의 생산성이 높다. 사회가 수준 높은 교육시스템을 통해 작업 숙련도와 이해도가 뛰어난 노동 인력을 공급하고 SOC를 통해 자원이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는 기반시설을 조성하면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래서 SOC가 잘 갖춰진 국가일수록 세율이 높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경제적 성공은 공동체가 구축해 놓은 공공자원에 의지한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 인프라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고 기업의 수익을 결정한다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부동산 한 뼘 갖지 못한 사람이나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 사람도 종부세나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민과 기업에게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조세부담을 무시하고 불공정하게 세금을 징수하거나 혈세를 불공정하게 쓸 때 조세저항에 직면한다. 조세저항은 흔하게 정권교체로 나타나기 마련이어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어떤 정부도 증세를 주저한다. 납세자인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다.

“강약 진화로 평등 세상 이룹시다.” 올해 전산종법사 신년법문이다. 공평하게 걷고 제대로만 쓰인다면, 세금은 강자와 약자를 공진화(共進化)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인과를 깨친 사람은 모든 일을 이치의 눈으로 보고 인과를 모르는 사람은 집착의 눈으로 본다. 공부인이라면 당장 나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을 아까워 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세금을 걷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세금이 쓰이는가를 따질 줄 알아야 한다.

/강남교당

[2023년 10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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