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인 교도
조해인 교도

[원불교신문=조해인 교도] 원불교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안 난 폭 잡고 소태산 대종사님 말씀 믿어보라”는 교무님의 말에 죽은 셈․속는 셈 치고 원불교를 다녔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해볼 생각이었다. 긴가민가하다가도 ‘하고 또 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실천해 봤다. 

실천 내용은 별 것 아니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와 ‘처처불상 사사불공’, 그리고 ‘교당을 빠지지 말자’다. 세 살 아기도 알지만 육십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이 법문, 육십 나이를 넘어서니 “진짜 맞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원불교를 다니면
좋은 열매와 좋은 인과가
맺어진다.
이 공부 하기를 참 잘했다.

먼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에 대해 말해본다. 나는 나의 친부모님을 모른다. 나는 입양됐지만, 새엄마는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들으란 듯이 수시로 던지는 악담에 억울함이 들었고 그래서 많이 원망했다. 이게 강적의 경계이자 은혜라는 것을 알고서는 원망을 감사로 돌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잘 안 됐지만, 돌리는 것을 하고 또 하다 보니 그게 밑거름이 돼 오늘날 잘 살면서 원불교도 더 잘 다니게 됐다.

다음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결혼식 때 주례사에서 이 부분을 당부받았다. 그래서 남편, 시부모, 시누이 등 여러 명의 시부처님을 한 집에 모시고 인정받을 때까지 사사불공 했다. 한 3년을 그러고 나니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 당시 태중에 둘째가 있었는데, 아이에게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다행히 기적처럼 퇴원할 수 있었고, 큰아들은 포항공대 교수, 둘째는 한의사가 됐다. 이게 기적 아닐까. 또 나는 초등교사로 근무하며 학교를 큰 복전으로 삼았다. 아이들을 부처님으로 대하며 정성을 다해 사사불공했더니 수천 명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나를 좋아해 줬다. 덕분에 이런 기적들이 생긴 것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교당을 빠지지 말자’다. 내 마음의 유통기한은 일주일이다. 그래서 교당에 빠지지 않기 위해 피아노 반주와 설거지·식사 공양을 자청해 맡았다. 법회에 피아노 반주자가 없기에 도전했던 것인데 아무리 연습해도 자꾸 틀렸다. 한 십 년 정도 계속하다가 피아노를 진짜 잘 치는 도반에게 양보했다. 다음으로 설거지. 어르신들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식사를 공양 받았고, 그 설거지를 늘 하고자 했다. 그러다 ‘이제는 내가 식사공양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부모님께 드린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부족한 음식솜씨는 하고 또 하다보니 먹을만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교당에서 공양 하면서 결석을 거의 안 하게 됐다. 그렇게 일주일 치 법문을 마음에 새기며 교법실천을 하고 또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날마다 기적 같은 날을 만난다.

감사생활하며 사사불공하고 교당에 안 빠지면 뭐가 돼도 된다. 좋은 열매와 좋은 인과가 맺어진다. 교법을 잘 받들어 시비이해 없이, 분별주착 없이, 삼독심 없이, 작업취사 잘하는지 챙기고 또 챙기면 반드시 서원을 이룰 수 있다. ‘안 난 폭 잡고’ 이 공부 하기를 참 잘했다.

/진주교당

[2023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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