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3년(1918), 원불교 최초의 교당을 신축하다

최초의 교당 구간도실 터, 원기28년(1943) 촬영
최초의 교당 구간도실 터, 원기28년(1943) 촬영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1916) 교단 건설에 착수해 그해 12월에 표준제자를 내정하고, 원기2(1917) 저축조합을 결성한 다음, 원기3(1918) 4()에 길룡리 간석지 방언공사에 착수했다. 이에 관련한 모임 장소로 범현동의 이씨제각과 강변주점 등을 이용하는 등 불편이 있었다.

제도사업을 향한 공부의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그해 10()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 옆 옥녀봉 아래 건축을 착수해 골바람과 눈보라를 무릅쓰고 12월에 완공했다. 상량문을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收萬木餘春立 溪合千峰細雨嗚)’이라 썼으며, 집의 이름을 대명국영성소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라 붙였다. 이 집은 구인제자들의 모임 장소와 방언공사 현장사무소, 그리고 기도 장소로 사용됐다.

이런 용도에 따라 제자들은 이곳을 조합실(組合室)’ ‘회실(會室)’ ‘교실(敎室)’ ‘도실(道室)’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구간도실(九間道室)’이라 부르며 원불교 교당의 효시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간도실을 원기8(1923) 현재의 범현동으로 옮겨 짓고 영산원(靈山院)’이라 이름 붙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구간도실 터를 장엄하고 주위를 법인광장으로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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