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써머즈]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마히토는 공습으로 병원이 폭격을 당하는 바람에 어머니를 잃습니다. 그리고 위험을 피해 아버지와 함께 외가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마히토의 작은 이모인 나츠코와 결혼을 하고, 마히토는 꿈속에서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왜가리를 만나 괴로워합니다.

왜가리를 쫓던 마히토는 탑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왜가리는 “여기에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합니다. 마히토가 들어간 탑 안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나츠코가 왜가리를 쫓아내고 정신을 잃었던 마히토는 꿈에서 깬 것 같지만 이 모든 기묘한 일들이 꿈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는 논리정연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작품은 주인공 마히토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소망과 함께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실존적인 질문을 풀어내지만, 감독은 이야기의 구성이나 편집을 정리할 생각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이미지들이 논리적인 구성을 떠나 스크린에 자유롭게 펼쳐집니다.

이 작품은 요시노 겐자부로가 1937년에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동명의 청소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은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이 외삼촌과 일상과 세상에 대해 대화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품는 내용을 그린 작품입니다. 참고로, 영화는 책의 제목과 주제 의식만 빌려왔고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원작이 일상에 기반을 둔 10대 조카와 삼촌의 문답 위주의 구성이라면, 이 작품은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사건이 반복되는 지브리 특유의 모험극 형식을 취하며 관객들의 생각이 정리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쏟아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감독의 여러 전작을 스스로 오마주하는 인물이나 장면들도 인상적입니다. <벼랑 위의 포뇨>의 소스케, <원령공주>의 코다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센과 치히로, <천공의 섬 라퓨타>의 계단,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문 등 전작에 담긴 여러 이미지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활용됩니다.

은퇴를 번복한 노장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자신이 어렸을 때 읽었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책에서 영감을 얻어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답 하는 대신 “나는 이렇게 살았다. 당신은?”이라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슬로우뉴스 전 발행인

[2023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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