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그 시절, 부모님 따라 들어선 양장점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형형색색의 원단과 각종 패션 잡지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긴 줄자로 몸 치수를 재는 원장의 능숙함은 세상 멋져 보였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도, 멋지게 쭉 빠진 겨울 오버코트도 메이드 인 ‘○○ 의상실’. 아직도 이름이 생생한 그 의상실은, 다행히도 현재까지 군산 패션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때 맞춤 제작한 엄마의 리본 달린 블라우스를, 나는 지금도 즐겨 입는다. 

새 옷을 맞추고, 가봉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시절, 남성들의 양복 맞춤점은 왠지 모르게 고풍스러웠다. 체형을 정확하게 재단하고, 수십 년의 노하우로 단 한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드는 숙련된 장인의 수제 정장. 그 완성도와 전문성은 양복 오른쪽 안 주머니에 붙은 ‘○○라사’의 이니셜에 새겨지는 듯했다.

뉴트로 시대, 시크한 쓰리피스 블랙수트로 멋을 내는 젊은 여성. 베이직한 디자인으로 절제미를 살리면서, 허리 위치와 실루엣을 원하는 디자인으로 주문한다. 대도시에는 양장점이 다시 등장했고, 훤칠한 젊은 사장의 조언을 받으며 맞춤셔츠를 주문하는 또래 고객은 원단을 직접 만져보며 선택한다. 소매끝 모양도 취향에 맞게 고르고, 카라부분 모양도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한다. 색상부터 원단, 모양까지 다 고르고 나면 이젠 사이즈 재기. 그 옛날처럼 이니셜도 새겨준단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나만의 셔츠’를 입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정장 입으면 나이 들어 보인다? 이젠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정장, 셔츠, 타이, 구두까지 ‘가장 이상적인 핏’과 ‘실루엣’을 찾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엣지가 폴폴. 그러니 레트로 시대도 뉴트로 시대도, 패션의 시작은 역시‘양장점’이다.

[2023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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