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과 함께 새 생활 운동을 전개했다. 원기3년(1918) 봄에는  “길룡리 간석지를 방언해 공익의 길로 가자”고 제안했다. 조합원들은 서약을 올리고 정신·육신·물질로 전력하면서 약 1년간 공사를 거쳐 바다를 막았다. 그리고 이를 기념해 옥녀봉 기슭 바위에 이름을 새겼다(제명바위). 이 땅에는 후에 정관평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정관평은 초기교단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3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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