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원 교도회장
최영철 교도회장(법명 제원)

[원불교신문=최영철 교도회장] 케냐에서 가발 사업을 한 지 40년이 다 되어 간다. 내 젊은 날 도전과 열정을 쏟아부은 케냐는 제2의 고향이다. 황무지였던 이곳에서 수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서 우뚝 선 뚝심도 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성실하게 오직 한 길을 걸으며 나 스스로 다짐했던 정직함이 한몫한 것이라 자부한다.

케냐를 포함해 아프리카 여성들은 뜨거운 태양볕이 두피에 닿는 것을 막고, 곱게 빗어 이은 머리로 통풍이 잘되게 해 위생과 미용상 보기에 아름다운 가발을 땋는 것이 자신을 잘 꾸미는 것으로 여긴다. 나는 이곳으로 건너와 수많은 케냐 여성들이 실과 직물로 자신의 머리를 이어 땋고 꾸미려는 것을 보고 가발 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도심과 떨어진 루이루라는 외곽지대에 공장을 지어 가발 제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현재 루이루 지역은 2만 평 넘는 가발 공장단지가 조성돼 8천 명이 넘는 여성들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이들이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의식주를 해결하는 소도시 중심지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돕기만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님이

“여행 잘 다녀오시라”며 100불을 건네셨다.
이때부터인 것 같다. 원불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싹텄다.

원불교와의 인연
어느 날 타라 지역에서 기술학교를 짓고 활동하는 원불교 교무님(한제은 교무)이 가발 미용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면담을 요청해왔다. 교무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라 지역은 규제도 많고 현지인들 간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데다 치안과 안전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당시 루이루 가발공장 지역도 시설이 낙후하고 외부에서 몰려드는 노동자들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밀집돼 도움을 받아야 할 곳이 많았다. 공장 주변에 사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겨야 할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공공건물이 부족했던 것이다.

교무님의 사역(교화계획)과 숙원사업을 들어보니 넓은 땅과 필요한 인력 등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역할이 있어 보였다. 이에 교무님은 교화지를 루이루로 옮겼고, 땅을 받아 교당과 유치원 건물을 짓고 확장해 안정적으로 원불교를 알리면서 점차 지역사회에 자리 잡게 됐다. 
 

지난해 서울 방문시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서 나상호 교정원장과 함께.
지난해 서울 방문시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서 나상호 교정원장과 함께.

교무님과 원불교에 대한 첫인상
살면서 그렇게 작은 키를 가진 분은 처음 만났다. 그 작은 분이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케냐 시골에서 기술학교를 하신다고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을 정도다. ‘보통 분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무님이 꾸준하게 추진력을 갖고 밀고 나가는 모습에서 처음 아프리카에 왔을 당시의 내 모습을 보았다. 교무님께서 하는 일을 돕고 싶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돕기만 해왔다. 뭐든 주는 입장이었고, 내가 (먼저) 하려고 하며 살아왔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십원 한 푼도. 그런데 어느 날 교무님이 나에게 “여행 잘 다녀오시라”며 100불을 건네셨다. 용돈이라고 했다. 감사하다며 받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 돈은 회장님께 드리는 용돈이에요.” 작은 보답이었지만, 교무님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이때부터인 것 같다. 원불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싹텄다. 

원불교의 선한 영향력
그동안 케냐에서 사업을 하면서 각종 종교를 접해왔다. 초창기에 한인들이 정착할 때 한인회장직을 맡아 케냐 정부로부터 땅을 얻어 교회와 한인회를 만드는 일에도 앞장섰다. 어려운 가톨릭 선교지의 수녀님에게도 후원하고 있고, 우리 회사 전 직원에게 교무님이 적극적인 교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원불교의 교리나 원리를 깊게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불교의 일종으로 생각했는데, 교무님이 하는 일들을 돌아보면서 원불교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원불교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취직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활에 안정을 얻는 것을 보았고, 엔젤 원불교 유치원을 지어 성심껏 아이들을 뒷바라지해 최고의 유치원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엔젤 원불교 유치원은 지역사회에서 좋은 유치원으로 평가받아 서로 들어오려고 하면서 대기자가 많다. 특히 우리 회사에 다니는 자녀들은 학비를 공제받기 때문에 더욱 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케냐 원불교는 조용히 묵묵히 정직하고 성실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아낌없이 앞장서고 있다. 후원을 받아 코로나19 때 먹을 것이 부족한 지역에 우갈리(아프리카의 주식) 식량을 나눠줬고, 옷과 신발을 기증받아 입을 것도 나눠 줬다. 선한 영향력으로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려는 원불교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는다.
 

코로나19 시기에 옥수수 나눔 행사.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케냐교당
케냐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현지인들의 삶은 계속 궁핍해지고 있다. 내수가 침체 되고 인구에 비해 일자리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 앞으로의 삶이 더욱 곤궁해질 수 있어 걱정이다. 공예기술이나 버섯농작물 재배 등 기능인들을 위한 다양한 기술학교의 건립과 지원이 필요하다. 

원불교가 케냐의 지역사회에 잘 정착해 많이 알려진 만큼 지속적인 지원과 기술협력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번성할 수 있도록 재단에서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셧다운 돼 공장들이 문을 닫아야 하거나, 최근 내수와 물가가 올라 수입에 의존해 제조하는 우리 회사도 2주 정도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처지가 생기면, 공장지대에 사는 가족들에겐 타격이 클 수 있다.

원불교가 케냐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케냐교당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하고 싶다.

[2023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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