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고 한다. 

많은 청춘들이 살아가는 일로 아픔을 호소한다. 취업난은 지옥이고, 직장생활은 험난하고, 인간관계 등에서 아픔을 호소한다. 세월을 더 많이 살아온 어른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식 걱정은 끊일 날이 없고, 쇠약해지는 육신은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고,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분통이다. 어린아이들마저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공부에 매달리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처럼 삶의 짐은 원초적이다. 철없는 아이가 제 맘껏 뛰어놀고서 내뱉는 소리도 “아이고, 힘들어”다. 그래서 사는 일에 모두가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산더미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서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면 그건 거짓일까. 사람은 물리적 무게만을 느끼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기쁨은 단순히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니다. 시지프스가 굴러 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산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수행한다고 해서 기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 형벌에 원망이 없다면 그의 노동은 기쁨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인생은 무겁기도 하지만 가볍기도 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하루가 무겁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하루종일 하늘을 떠다니게 한다. 걱정이나 시름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지만 기쁨이 많으면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지만 생각이 담박하면 마음의 짐도 가볍다. 욕심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고 욕심을 버리면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엇이나 소유하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버림의 무소유는 자유의 원천이 된다. 

또 갈등하는 마음이 무겁다면 화합하는 마음은 가벼운 솜이불이 되고, 화나 분노가 무겁다면 용서와 소통은 가볍다. 죄 짓는 마음은 무겁고 불안하지만 복 짓는 마음은 늘 넉넉하다. 부정의 마음에는 스트레스가 자주 동반되지만 긍정의 마음에는 배려가 함께 하기에 기쁘다. 

밥을 많이 먹거나 거하게 섭취하는 것이 몸을 무겁게 한다면 절식생활은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하는 특효약이다. 받는 사람은 무엇이든 가져오기에 무거워지지만 주는 사람은 뺏기는 듯해도 알고보면 짐을 덜어내는 일이 된다. 혼자 가는 길이 무겁고 두렵다면 함께 가는 길은 든든하고 궁극에는 가벼워지는 일이다. 그래서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놓을 날이 없지만 적당히 소유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종교의 길은 짐을 덜어내는 일이다. 욕심을 덜어내고 마음 걱정을 떨쳐내고 나눔을 배우는 길이기에 삶이 가벼워진다. 특히 진리는 굳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 마음만 진실 되면 곳곳에 가득 찬 게 진리이기에 온 천하가 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 시방일가 사생일신이라 했다. 

본래 우리는 가볍게 태어났고, 떠날 때는 누구나 빈손으로 간다. 

[2023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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