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은
정형은

[원불교신문=정형은] 지난 10월 14일 파주 적성면 식현리 ‘평화마을짓자’밭에서는 가을잔치가 열렸다. 평화마을짓자의 회원들은 5년째 유기순환농사를 지으며 농약과 제초제는 물론, 비닐을 덮지 않고 땅도 해마다 갈아엎지 않으며, 흙과 그 땅에 사는 생명들을 살리고자 애써왔다. 커피찌꺼기와 발효볏짚을 덮어 풀을 잡고 거름이 되도록 하며, 밭 곳곳에 음식물쓰레기를 삭히는 항아리를 놓았다. 우리 옛 선조들의 농법에서 영감을 얻은 ‘퍼머컬처’ 방식으로 밭을 디자인해 두둑을 높게 쌓아 올렸더니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표토층의 영양분이 식물들을 잘 자라게 했다.

마을김장을 하려고 심은 배추가 망사처럼 벌레 먹어 걱정했는데 새로 나온 잎들은 무럭무럭 자라 굳이 묶어주지 않아도 일년내내 무르지 않고 아삭한 김치맛을 내는 배추가 됐다. 도시의 중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와서 추운 날씨에도 종일 배추를 절이고 씻고 버무리면서, 쉬는시간에는 보쌈김치에 수육을 먹으며 좋아라 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교실에서는 장난이 심하고 사고도 자주 일으키던 기운 넘치는 녀석들이 탁 트인 밭에서 추운 바람에 볼이 빨개진 채로, 낯선 어른들 틈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모습은 흐뭇한 풍경이었다. 
 

지구가 웃는 채식밥상
‘예술로 농사짓고 
농사로 평화짓자’

올해가 두 번째인 평화마을짓자의 가을잔치는 가까운 초·중등학교와 문화센터에 직접 가서 놀러오시라고 홍보하고 초대해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대동마당이었다. 비가 내려 어쩌나 걱정했는데 지난해 땅을 2미터 가량 파서 관을 연결해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한 에너지자립온실이 특별한 공연장으로 탈바꿈 했다. 예술가의 솜씨로 만든 색동평상은 안성맞춤 무대가 됐다. 그 위에서 펼친 뮤지컬‘레인보우 공항’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채식밥상을 연구하는 분들이 새벽에 평화마을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스무가지 넘게 따와서 커다란 테이블에 샐러드상을 근사하게 채워줬다. 더불어 형형색색 꽃초밥과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채소롤과 카나페가 준비돼 건강하고 색다른 음식으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줬다. 

낮에는 비닐하우스 위로 후두둑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추고 따뜻한 햇살이 장독대와 공동체밭에 내려앉은 빗방울 위에 찬란하게 내려앉았다. 

적서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밭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들고 예술가들과 실크스크린으로 티셔츠에 농부 그림을 찍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웃음소리는 가을잔치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시설 좋은 공연장과 무대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하늘이 열린 밭과 비닐하우스 온실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라는 식물들 사이사이를 거닐 수 있고, 냄새 맡으며 느리고 평화롭게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축제의 장이 됐다. 지구가 웃는 채식밥상을 즐기며 ‘예술로 농사짓고 농사로 평화짓자’는 모토아래, 우리는 평화와 생태 위기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 가능성과 가치를 오늘도 상상하고 실험 중이다.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2023년 11월 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