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진 교도
황서진 교도

[원불교신문=황서진 교도] 칼퇴근은 좋고 회식은 싫어하며, 사생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와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라떼(나때)는 말이야’만 반복하는 꼰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양쪽을 오가며 눈칫밥만 먹는 낀대(낀세대)가 있다. 모두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직장 세계 속 인류들이다. 오늘도 더 열심히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워라밸’만 외치는 MZ사원들에게 질려버린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 <드림>은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을 끌어안은 이병헌 감독이 올해 초 4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대한민국 홈리스 대표팀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이병헌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직접 <빅이슈> 사무국을 찾아가 취재하고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홈리스 월드컵에 동행하는 등 발로 뛰어 시나리오를 완성해냈다.

영화는 선수 생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개념 없는 축구선수 홍대가 이미지 세탁을 위해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에 나서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기에 이들의 여정으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열정 없는 PD 소민까지 합류하면서 좌충우돌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 중 첫째는 단연코 ‘개념 없는’ 홍대와 ‘열정 없는’ 소민의 티키타카다. 홈리스 풋볼 월드컵을 소개하기 위해 홍대와 소민은 처음 만난 자리. 이 자리에서 자신을 ‘열정이 지난 나이인데 열정페이 받고 일해’라고 소개하는 대표의 말에 “열정은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올라서요. 제 열정을 최저임금 페이에 맞췄더니 그 후론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라고 맞받아치는 소민이 그 예다. 여기에 더해 홍대를 불러내 혼이 쏙 빠지도록 혼내주는 소민을 보며 홍대가 ‘정상이 아니야’라며 고개를 젓자, 소민은 “이 미친 세상에 미친X으로 살면 그게 정상 아닌가?”라고 대꾸한다. 혹시 지금 이 말을 보며 소민에게 설득당했다면, 여러분은 지극히 ‘정상’이다. 홍대 역시 그런 소민에게 수긍하고야 만다. 그의 대사를 빌리자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 젠장!”이기 때문이다.
 

영화  스틸컷 /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드림〉 스틸컷 /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살아가기 위한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줄 뿐.
삶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쩌면 개념 없고 열정 없는 이 두 청년을 보며, 요즈음 속을 뒤집어 놓던 직장 내 어느 MZ세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럴 때마다 홍대와 소민의 티키타카를 곱씹어 보길 추천한다. 분명 풋 웃음을 터뜨리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눈앞 MZ세대의 얼굴 위로 홍대와 소민이 겹쳐 보이는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두 사람을 밝고 단순해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지만, 적당히 가식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인물로 해석한다. 이런 미친 세상이라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을 찾아냈을 뿐인 ‘미생’인 거다.

영화 <드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개념 없는 축구선수 홍대도, 열정 없는 MZ 직장인 소민과 각각의 사연으로 홈리스가 된 홈리스 국가대표팀 선수들마저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로 그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뒤처진 곳에 있는 그들에게 과한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건 누구 하나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과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킬레스건과 같을 ‘거지’라는 단어에도 “거지 맞지, 뭐!”라며 깔깔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주인공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성취해낸다. 여기에서 성취란, 홈리스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다거나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대박이 나는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영화는 살아가기 위한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줄 뿐, 그 안에서 승패를 가르지 않는 것으로 삶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드림>에서 보여 준 이 시각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MZ’ 혹은 ‘꼰대’라는 태그로 사람들을 묶어 특정하더라도 결국엔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한 사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땐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날 때까지 억지웃음을 짓는 소민을 떠올려보자. 따라서 억지로 웃는 것마저 어렵다면, 소민의 마지막 명대사를 읊조려보는 건 어떨까. “쇼? 끝은 없는 거야. 근데 쇼하고 자빠지잖아? 그거는 우스운 거야.”

/방송작가, 고창교당

[2023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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