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소태산 대종사 원기원년(1916) 4월 28일(음력 3월 26일) 이른 새벽에 우연히 정신이 쇄락(灑落) 해지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있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밖에 나와 사방을 살펴보니 천기가 심히 청량하고, 별과 별이 교교(皎皎) 한지라, 이에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뜰 앞을 배회했다. 

문득 이 생각 저 생각이 마음에 나타나, ‘그동안의 지내 온 바가 모두 고생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며,‘고생을 면하기로 하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날이 밝으면 머리도 빗고 손톱도 자르고 세수도 하리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됐다. 이에 날이 밝자 청결 기구를 찾게 되니, 이를 본 가족들은 소태산 대종사의 의외 행동에 한편 놀라고 한편 기뻐하여 그 동작을 주시했다. 이것이 바로 소태산 대종사 출정(出定)의 첫걸음이었다. 

이날 조반 후, 구수미 장터에 가던 사람들이 잠시 노루목 고인돌 등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동경대전〉의 한 구절을 가지고 담론을 하게 되며, 얼마 후 유학자 두 사람이 〈주역〉의 한구절을 가지고 논쟁함에 그 뜻이 훤히 떠올랐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를 이상히 여기며, “이것이 아마 마음 밝아지는 증거가 아닌가”하여 전날에 생각했던 모든 의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니 모두 한 생각을 넘지 않게 됐다. 드디어 대각을 이뤘다. 

소태산 대종사 이에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고 말씀했다.(〈대종경〉 서품 1장)

또한 이렇게 마음 맑아지는 것이 마치 새벽에 날이 밝으려 함에 만상이 저절로 나타남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훗날 이때의 심경을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象自然明, 맑은 바람 불고 둥근 달 떠오르니 삼라만상이 자연히 밝아지도다)’이라 표현했다.(〈대종경〉 성리품 1장)

이로부터 소태산 대종사의 심경은 날이 갈수록 명랑해지고, 야위던 얼굴과 몸에 기혈이 충만해, 그간의 모든 병증도 차차 저절로 회복되니, 보는 이들 누구나 정신이 황홀했다.

대각터는 교단에서 성적 제1호로 지정했다. 처음에는 빈터에 돌을 세워 그 대각을 이뤘던 터를 기념·보존해 오다가 원기56년(1971) 10월, 개교반백년기념사업회에서 영산성지 노루목에 기념비를 세웠다. ‘만고일월(萬古日月, 영원한 세월에도 다함이 없는 해와 달의 광명)’이라 새긴 비문은 소태산 대종사의 지혜 광명을 비유한 표현이며, 글씨는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이 썼다. 

소태산대종사대각비인 만고일월 비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을 기리고, 28년간의 제도사업을 추앙하기 위해 세웠으며, 원기101년(2016)에는 100년 성업의 일환으로 일원탑을 조성했다. 

[2023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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