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그날은 천일기도가 끝난 날이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속도로 차가 달리는 고속도로 한복판. 사고는 눈 깜짝할 새 일어났다. 앞차가 갑자기 멈췄고 그의 차는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은 뒷차가 그대로 와서 쿵, 꼼짝없이 중간에 끼인 상태로 발생한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럽고 아찔한 사고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박성란 교도(서대전교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은님 감사합니다”였다. “큰 사고였는데 차에 있던 여섯 식구 모두가 다치지 않고 무사했어요.” ‘만약 뒷 차가 트럭이었으면 어쩔뻔 했나’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그. 어쩌면 불행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 사고에서도 그는 여지없이 감사를 찾아낸다.

박 교도는 연원인 이모를 따라 서대전교당에 왔다. 교당에 처음 오던 날, 낯가림이 있을법 하건만 그는 마치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아마도 제가 전생에 교무님이었을까요?” 그날 교무님과 대화를 하다 까무룩 낮잠에 들 정도로, 그에게 교당은 편안했다. “목탁치고 독경하는 것도 어찌 그리 재밌던지. 아마 원불교가 제 운명이었나봐요.” 결혼 초기 시집살이와 세상사가 맵고 시린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박 교도는 매주 일요일 법회가는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넘겼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40년. 그 세월 속에는 무더위에 얼음주머니를 차고 교무님을 도와 법회를 보던 날도 있었고, 그 오래된 교당이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감격스러워 흘린 눈물도 있다. 그래서 박 교도에게 교당은 또다른 집이고, 교무님은 또다른 가족이다. 

박 교도는 교당에서 자신을 찾으면 설사 힘든 날이어도 늘 “네, 가지요! 당연히 함께 해야지요!”라 외치며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일까. 청년시절부터 엄마를 따라 교당에 출석도장을 찍던 딸은 어느날은 대화를 하다가 “엄마는 참 원불교인 답다”고 말했다.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의 딸은 결혼해 이사를 가서도 그곳에서 교당을 찾아가며 둘도없는 그의 도반 노릇을 하고 있다. “딸과 제가 매일 심고를 올리고 기도를 하니 하루는 손녀가 달려와서는 ‘유치원에서 재밌게 잘 놀고와서 감사합니다’하더라고요(웃음).”

박 교도에게 앞으로의 공부길을 물었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저를 힘들게 하셨던 시어머니가 지금은 ‘우리 며느리가 최고’하세요. 저는 이것이 원불교 공부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신심은 매일 떨어지는 물방울을 닮았다. 그 물방울은 단단하게 뿌리내린 불신과 원망을 뚫고 선한 물길을 내는 중이다.

[2023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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