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호 교무
현상호 교무

[원불교신문=현상호 교무] 미주 서부교구에서 진행되는 8주짜리 교리학교 강의를 위해 남가주에서 북가주 각 교당들을 방문하는 여정 중 1주차 여정인 샌디애고교당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2주차 여정인 오렌지카운티교당으로 가기 위해 샌디애고 올드타운 기차역에서 에너하임으로 가는 아침 기차를 탔다. 

줄을 서서 앞의 사람들을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가 가방을 짐칸에 놓고 짐과 가까운 화장실 앞자리 창가에 앉았다. 맞은편 좌석에 어떤 노숙자 차림의 중년 남성이 비닐봉지 2개를 들고 앉아도 되냐고 물어서 앉으라고 했다. 며칠간 씻지 않아서인지 머리는 기름에 절어 있었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입고 있는 상의에서는 고약한 암내가 났고 청바지는 얼룩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냄새를 맡는 순간 헛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간신히 참았다. 애써 그 사람을 외면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아름다운 샌디애고 시내를 감상하는데, 그 사람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 때문에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워싱턴 주에서 기차를 타고 샌디애고까지 왔다고 하는 것이다. 며칠 후에 나도 그 여정을 거꾸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곳의 날씨와 얼마나 오래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말문이 트여서 2시간 동안 그 사람과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면서 애너하임 역에 도착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앨리엇이고 나이는 56살이며 과테말라 출신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인도 식당 매니저를 한다고 했는데, 10월 16일에 샌프란시스코에 간다고 하니 한번 찾아오라며 내게 자신의 연락처를 줬다. 그리고 자기가 맥주는 서비스로 준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 

평소에 노숙자들을 보면 눈을 피하고 차갑게 대응하던 과거의 나를 살펴봤다. 그들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커서 문제로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이 몸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인간으로서 존엄과 존중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도 유학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길거리에서 많은 철학자들을 만났다. 오토 릭샤 운전자나 짐꾼 등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도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내가 못 당할 일은 남도 못 당하는 것이요, 내게 좋은 일은 남도 좋아하나니,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리하라. 이것은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같이 오래오래 공부하면 자타의 간격이 없이 서로 감화를 얻으리라”라고 했다.

앞으로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면 습관적인 판단은 잠시 접어두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오는 인연이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만 챙기며 나의 존재를 잠시 내려놓은 상태에서 그 상대방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가장 재미있고 신비로운 일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들었다.

/하와이국제훈련원

[2023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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