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하노이교당 봉불식장에 긴 옷 자락을 한 세 사람이 들어선다. 흰 옷 자락은 한화중 교무의 법복, 파란 옷 자락은 김승국 교도(본명 성국)의 두루마기, 그리고 연꽃이 새겨진 옷 자락은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원신성 교도(본명 팜 티 느아)의 것이다. 한 교무의 뒤로 부부가 각각 일원상과 <원불교 교전>을 들고 식장에 들어서면서, 역사적인 봉불식이 시작됐다.

이 순간 누구보다 가슴이 벅찼을 원 교도. 그는 하노이교당의 시작이자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로 불린다. 10년 전 베트남어 한마디도 모르고 하노이에 도착한 한 교무가 찾아낸 사람, 10년 만에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외국 종교 승인’으로 일원상을 두렷이 세워준 사람. 원 교도를 거룩한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최초’ 외국 종교 승인 이끌어낸 주역
한베문화센터, 하노이한국학교 설립 등 교육계 저명인사
“현대적․사실적인 원불교는 지금 베트남에 필요한 종교”

시작은 ‘불쌍한 마음’
‘교민도 아닌 현지인이 이런 일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는 원신성. 그는 한국 유학시절 김 교도를 만나 결혼한 한베가정의 주인공이며, 몇 년 뒤 베트남에 함께 돌아와 한베문화센터 운영, 하노이한국학교 설립 등 교육계에 몸담아온 저명인사다.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던 아버지는 딸에게 교육에 대한 열정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동네, 도시, 국가, 세계를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자는 정신까지 물려 줬다.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늘 봉사하며, ‘나와 내 주변, 내가 속한 곳을 더 잘 되게 만드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2014년 한베문화센터 졸업식에서 하얀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한국인이 인사를 했어요. 이후 한 교육생으로부터 그 분이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얘기를 들었죠. 그런데 약속날 안 나타나는 거예요. 신용이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 실망했는데, 알고보니 중간의 교육생 문제였더라고요.” 이처럼 애매하게 만날 듯 안 만나지기를 몇 번, 그러다 한 교무를 드디어 만난 원 교도는 깜짝 놀란다. 한 교무가 한국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 산다는 것, 그것도 현지인조차 잘 가지 않는 마약거리 근처에서 머문다는 점 때문이었다. 원불교는 전혀 몰랐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어 도와주기로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해내겠다’
“돌아보면 교무님이 좋아서 원불교도 좋았나봐요. 제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검소하고, 봉사하며, 아낌없이 주는 한 교무님 모습에 감동했죠. 교무님과 원불교 공부를 하다 보니 교리가 좋았고,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니를 비롯한 베트남 사람들을 모아 법회를 보게 됐고,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의 종교활동, 그것도 외국인의 종교활동은 자유롭지 못해요. 그래서 베트남에 원불교를 정식으로 만들자는 서원을 세우게 됐습니다.”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외국종교에 대한 완고한 빗장을 그는 어떻게든 열고 싶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아무리 힘들어도 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내 소원은 베트남에 원불교 만드는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주변을 수소문했고, 모든 인맥과 인프라를 동원해 방법을 연구했다.

“베트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과정이 어마어마했어요. 제출해야 할 서류만도 두꺼운 책 몇 권 분량에, 교무님에 대한 개인 정보까지 내야 했죠. 저는 남편과 함께 밤을 새워 교리를 번역하고, 원불교가 어떤 종교이고 베트남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기를 1년여, 드디어 빗장이 열리고 ‘원불교 종교활동 허가서’가 나왔다. 모두들 이를 ‘기적’이라 했으나, 원 교도를 아는 이들은 ‘기도’라 말했다. 사실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혹 원불교에 피해가 갈까봐 그마저도 조심한 결과였다.

“교육에 대한 원불교의 경험과 비전이 주효했어요. 교육과 건강은 현재 베트남에서 참 중요한 가치이자 유망한 시장이죠. 로컬유치원을 비롯해 다양한 교육기관으로 타자녀교육과 동포은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또 제가 오랫동안 해온 한베문화교류도 원불교에서 많이 담아 교화하려 해요.”
 

원불교는 베트남에 필요한 종교
인구 1억명을 돌파한 베트남은 국가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이자, 한 해 신생아 수가 160만명에 이르는 젊은 국가다. 교육으로 개인과 국가의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 중이다. 특히 ‘한국어를 알면 직업이 50개가 늘어나고 연봉이 2배로 뛴다’고 할 정도로 한국과 친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종교인 원불교의 교화는 더없이 적기다.

“베트남은 불교국가지만 도교와 합쳐져 사당에 비는 것이 중심입니다. 하지만 원불교는 현실 속에서 공부하고, 미신으로 흐르지 않아 현대적이며 사실적인 공부를 하죠.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원불교는 지금 베트남에 필요한 종교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이런 마음공부를 배워 생활 속 불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익을 위해서는 국적이나 신앙 그 어떤 울도 뛰어넘는 이 회상의 주인. 그 땅에서 기다렸다는 듯 교무를 맞이하고 일원상을 당당히 세워준 ‘단 한사람’ 원 교도.

우리는 그에게서 세계교화의 희망이자 개척교화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돌아본다. 어두운 세상 길잡이가 되는 ‘단 한사람’이 내게는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단 한사람’인가.

[2023년 1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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