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4년(1919), 소태산 대종사 일원상을 그리다

일원상을 처음 그린 김제 금산사 미륵전, 좌측 작은 집이 송대(조선고적도보)
일원상을 처음 그린 김제 금산사 미륵전, 좌측 작은 집이 송대(조선고적도보)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4(1919) 법인성사 후, 정산종사를 전라북도 변산 월명암 백학명 선사 문하(門下)로 보내고 김광선(金光旋)을 대동해 휴양 차 김제 모악산 금산사(金山寺)를 찾았다.

소태산 대종사와 김광선은 미륵전 뒤 송대 산 쪽의 방을 거처로 정하고 휴양하면서 짚신을 삼아 금산사 아래 원평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했다.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머물던 송대 방 출입구 문미(門楣, 창문 위에 가로 댄 나무. 여기에서는 문 위를 의미함)(일원상)’을 그렸다. 이는 자신이 깨달은 우주 만유의 본원을 으로 처음 그려 보인 것이다.

당시 금산사 미륵전에서 치성드리던 사람들이 소태산 대종사를 보고 덕화에 감복해 제자가 됐고, 수도하던 사람이 졸도한 것을 회생시키자 생불님이 나셨다는 소문이 퍼지며 일경(日警)이 민심을 현혹한다며 1주일간 김제경찰서에 구금 조사하기도 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 후 금산사 송대가 퇴락해 해체하고 다시 짓는다는 소식에 원평교당 교무 이운권이 송대 출입구 위에 있는 일원상이 그려진 해묵은 벽지를 수거해 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중앙총부가 인민군에게 점거당했을 때 벽지 일원상은 유실되고 말았다. ‘을 정식으로 불단에 공식적으로 봉안한 것은 원기20(1935) 익산총부 대각전이 준공됐을 때 목판에 일원상을 제작하여 모신 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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