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해바라기 마을 방송입니다. 
1. 주민 여러분 모두 독감 예방주사를 보건소에서 접종하기 바랍니다. 가실 때는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기  바랍니다.
2. 날씨 변동이 심합니다. 아침과 저녁은 쌀쌀하고 낮에는 덥습니다. 옷차림으로 체온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3. 물벼 수매를 10월 31일까지 농협 창고에서 진행하니, 착오 없기를 바랍니다.
4. 정순임 씨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함께 쾌유를 빌면서 건강을 기원합시다.
 

수세미를 파종한 아치형 그늘 통로.
수세미를 파종한 아치형 그늘 통로.

짓는 대로 받는 이치
3년 전에 시작한 환경공동체 활동의 지속 방안으로 식물 수세미를 심고 가꾸고 수확해 주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계획은 농촌 실정에 알맞는 환경 실천 사업이다.
<원불교신문>을 통해 소식을 보고 서울 홍제교당 등에서 “서울교구 바자회 때 그 취지를 살리며 동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반갑고 힘이 솟는다. 봄부터 수세미 모종을 붓고 잘 키워 산서 체육공원 게이트볼장 입구 아치형 그늘 통로 50미터 길이에 육영수 전 면장, 게이트볼 회원과 함께 파종을 했다. 잘 자란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는 재미가 여간 컸다. 그런데 그렇게 잘 자라던 수세미가 어느 날 모두 사라졌다.

‘익지 않은 수세미를 마구 따버렸네! 이를 어쩌나….’ 나중에 경찰을 통해 들으니 수세미는 인근 청소년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올라가서 따면 몇 사람이 밑에서 받아 여기저기 던지면서 놀이를 했다고 했다. 이후에 자란 수세미와 마을에서 키운 수세미로 겨우 환경 활동의 명맥을 이어 갈 수는 있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은 대로 다시 받는 틀림없는 인과를 경험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꼭 나의 청소년 시절과 닮아 피식 웃음이 난 것이다. 사실 어릴 적의 나는 더했다. 마을 주변 밭에서 가지를 따먹거나 달려 있는 채로 베어 먹으며 짓궂게 놀았으니까. 하루는 모성옥이라는 동갑 친구와 그렇게 놀다가 할머니한테 들켰고, 결국 어머니가 텃밭에서 가지를 한 소쿠리 따주며 말했다. “얼른 그 집에 전해드리고, 용서를 빌어라.” 60여 년 전 혼내시던 어머니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가가호호 쌀을 들일 때는 사람의 힘이 아니면 안 된다.
가가호호 쌀을 들일 때는 사람의 힘이 아니면 안 된다.

알고도 모르는 듯, 우리들의 쌀 도둑 이야기
벼농사는 4월 못자리, 6월 모내기, 10월 벼 베기로 연결된다. 올해 내가 농사지은 일반 벼는 흉년이 들었다. 하지만 찰벼는 풍년이었다. 직접 수확한 쌀은 비만 오지 않으면 3일간 햇빛에 말려 가마니에 담아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방아 찧어 먹는 맛이 제법 있다.

이런 일은 힘에 부치면 계속하기 어렵다. 나도 어디 5년 전과 같으랴? 그래서 포기하려다 다시 마음을 곧추세워본다. ‘이럴 때 나도 믿는 데가 있지.’ 고향에 온 후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보자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잘 지내고 있는 터라 그들에게 어려움을 말하니, 기꺼이 응해준다. 벼를 키우는 것은 땅이 바탕 돼서 하고, 베어 들이는 것은 사람이 기계를 이용하며, 말리는 것은 해와 바람이 한다. 하지만 이를 집에 들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힘이 아니면 안 된다. 모든 농작물의 수확은 천지인(天地人)이 아울러 빚어낸 진리의 작품이다.

농촌 토박이 친구 송상석과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생활한 농촌 출신 심창순, 나까지 셋이 만났으니, 옛날 자기 집에서 벼를 도둑질해다가 팔아 용돈으로 썼던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얼마나 웃었는지, 일 년 농사지으며 쌓였던 피로가 다 날아갔다. 그때는 부모님과 고생스러운 농사일은 같이하면서, 용돈은 받지 못했던 탓에 부모님의 논과 벼 저장고와 정미소 사이에서 쌀 도둑(?) 사건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것을 알고도 묵인했다. 아버지도 아는 듯 모르는 듯했다. 한국 농촌 역사 속에 애환이 깃든 자식들의 경제 조달 방법(?)의 일환이었으리라. 이러한 판토마임은 농민들이 벼 타작할 때 농주 한잔 마시면서 꺼내 안주 삼아 연출하는 노천극장의 무대이자, 배우가 되어 하는 이야기다.
 

마을 게시판에 게시된 〈원불교신문〉
마을 게시판에 게시된 〈원불교신문〉

다시 돌아보는 ‘참 인생 결산’
사실 참밭 동네, 우리 진전마을은 원불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원음의 메아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평안과 발전을 거듭해온 행복한 마을이다. 90여 년 전 모경희 교무님의 어머님이신 최보순 님이 금평에서 우리 마을로 시집오며 원불교 신앙의 씨앗이 싹텄다. 모성철, 모상준, 장인중, 장연광, 장인관, 장연환, 모경희, 모찬원, 모시은, 모인조, 모인규, 모인덕, 장선지, 장문규 교무 등이 출가한 고향 땅이기도 하다. 현재는 산서교당(이일도 교무)의 교도로 초타원과 행타원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원불교와 인연이 닿았고, 어머니의 조석심고 목탁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모태신앙인’이라 자부하면서 전무출신으로 53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고향에 와 마을 주민과 면, 군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고자 했다. 문득, 참 인생 결산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전마을 노래’를 전주곡으로, 안내 방송에 이어 법어를 낭독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주민 여러분! 한마음이 선하면 모든 선이 이에 따라옵니다. 한마음이 긍정적이면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잘 풀립니다. 모두 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과 우리 동네를 위해 가며 삽시다.” 이 방송을 듣고 건넛마을에 사는 홍은규 씨는 “법문방송에 우리 집 개가 먼저 짖으며 반응한다”며 좋아한다. 참 별일이다.

“내 인생 결산 통장에 잔액이 얼마나 있는가?” 또 “내가 고향에 와서 지역민들에게 어떠한 마음과 몸짓으로 다가가고, 우리네 인생 결산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묻고 생각을 나눠봐야겠다.

[2023년 11월 2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