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경 기자
유원경 기자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출가 서원을 세우고 학부 1학년으로 입학했을 때, 선배들과 지도 교무님들에게 처음으로 배웠던 법문이 <대종경> 신성품 10장 구정선사 법문이었다. 

처음 이 법문을 들었을 때는 반발심이 생겼다. 별다른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아홉 번 솥을 걸라는 스승의 말씀에 그대로 따랐다는 구정선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심 있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라고 말하며, “적어도 전무출신으로 공중사를 맡은 이가 되었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연구해 정확히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졌다. 그렇게 학부 기간 내내 그 법문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것이 요즘 말로 소위 ‘가스라이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이라는 도가의 가풍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있었다. 시비이해를 가리는 일에 앞서 중요한 것은 ‘시비이해를 초월한 마음’임을 알게된 것이다. 구정선사는 단순히 솥만 건 것이 아니라 스승의 마음과 한마음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있어 스승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시비이해를 넘어선 신성의 공부이며, 참 지혜의 시작이다.

대산종사는 사대불이 신심으로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과 하나가 되는 신심을 말씀했다. 시비이해를 초월한 자리에서 사 없는 공도심으로 교단과 스승과 법의 본의를 아는 것, 그것이 ‘특신’의 길이 아닐까. 매사에 자신 없던 나는 그 후로 공중사를 맡아 일할 때면 진리와 회상, 스승님을 믿고 용기를 내며 교화할 수 있었다. 개인의 내가 곧 회상의 대업을, 스승님들의 지도에 따라 천직을 맡고 있음에 겁이 없었다.

요즘 공부 표준으로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라는 법위등급의 조목을 자주 살피곤 한다. 시비이해를 가리기 전, 이 행동이 회상의 본의에 맞는지, 처처불상 사사불공으로 은혜가 되는지, 정말 사심 없이 공중사를 위한 행동인지, 사대불이 신심의 법문을 받들고 법에 맞는 공부심과 취사로 시비이해를 바르게 판단하는지도 돌아본다.

요즘 교단 이곳저곳에서 나름의 시비이해를 가리며 명분을 내세우는 모습을 본다. 어떤 이들은 시위와 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어떤 이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누군가는 스승님들의 취사가 잘못됐다고 부정하며 지나친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잘못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한편으로 씁쓸하다. 이게 정말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과 하나 되는 행동일까. 혹여 명분에 집착해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이 아니기를 바란다.

[2023년 11월 2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