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소장
이준원 소장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주관에 치우치면 객관을 잃고, 객관에 치우치면 주관을 잃는다. 주관은 의견, 객관은 사실이다. 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같은 사실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본다. 내가 인식한 사실과 남이 인식한 사실이 다르다. 소통은 나의 주관과 남의 주관이 서로 통하는 ‘간주관성(間主關性)’에 있다. 상호존중이다.

소통은 왜 안 되는가? 상대의 의견에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청은 왜 안 하는가? 내가 상대를 부정하거나, 상대가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개인주의 본질은 상호존중(Respect for each other)이다. 민주주의 성립 요건 중 하나는 상호존중주의다. 

일원상(一圓相)은 원만구족(圓滿具足)·지공무사(至公無私)다.  헌규의 근본규범, 최고행위규범이다. 역할수행에서 출가와 재가의 구분은 있되, 차별을 하지 않고 치우침이 없는 것이 원만구족이다. 

개인적 원근친소와 이해관계를 떠나서 교단 전체의 관점에서 공중사를 처리할 때 지공무사다. 법력이 깊어 감동과 감화를 주고, 교단과 사회에서 존경받는 재가 공도자도 최상위 교화단인 수위단의 단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교단 경영의 빛이 되어야 할  헌규가 어둠이 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는 천민자본주의에 물들면 ‘공금(公金)을 범하여 쓰지 말며’란 보통급 계문조차 어기게 되어 불신이 싹튼다. 독선과 아집에 빠지면 ‘공중사를 단독으로 처리하지 말며’,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며’ 특신급 계문도 범하게 된다. 이러한 부조리를 방치한 채 이상적 법과 제도를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일류와 명문은 다르다. 창립정신과 선배들이 쌓은 전통을 시대를 따라서 이어나갈 때 명문이다. 세칭 일류 국립대는 사립대보다 학비가 적게 든다. 사회 지도층이 되어 적은 학비를 빚으로 여기고 공도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초법어’의 가르침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의 울림이 더욱 크게 들린다. “일시적 어떤 명예에 끌려서 공중사를 표방하고 무엇을 하다가도 다시 사심의 발동으로 그 일을 실패 중지하여 이로 말미암아 모든 공익 기관이 거의 피폐하는 현상이라, 이것이 곧 큰 병이니라.”(<대종경> 교의편 34장).

/솔로몬연구소

[2023년 1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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