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명도훈 예비교무] 원불교대학원대학교 대각전 앞에 걸린 <정산종사법어> 제5 원리편 23장 말씀(그대들은 허공이 되라 (중략) 매사에 상이 없고 원근이 없으며 증애가 끊어지면 불보살 이니라)을 볼 때면,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성찰하게 된다. 

과거 내 마음은 마블 영화 속 헐크처럼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아무리 채워도 충족되지 않는 물질을 향한 끝없는 욕심과 어려운 인간관계,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항상 마음에 탐진치를 가득 채웠다. 허공같이 텅 비어 온 세상을 소유하는 마음, 이 마음을 보통 온전함이라 말한다. 나는 이 마음을 알기 위해 출가를 결정했다. 내가 이 의문에 대해 바른 답을 얻는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내가 온전함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내 앎과 삶 사이에 괴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온전함을 회복하는 것은 수상문정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마음 밭에 자라난 잡초를 뽑는다고 해놓고 뿌리는 그대로 둔 채, 가위로 잎사귀만 자르는 수준이었다. 나는 답답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온전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 마음은 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세상을 분별할 때, 그 기준은 32년간 살아오면서 겪었던 기억과 경험, 가치관이 기록된 ‘도훈이의 자서전’에서 찾게 된다. 자서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서전에 적힌 내용이 무조건 옳다’고 주착하는 마음은 문제가 된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 자서전에는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좋았던 경험이나 느낌이 기록돼 있는데, 내가 스타벅스 매장 앞을 지나갈 때면 자서전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낸다. 이때 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내지 않으면, 마음은 금세 욕심으로 가득해진다. 온전함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해 자서전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됐다. 내가 허공처럼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내는 나’를 철저히 비워내야 했다. 이렇게 비워진 나는 어느 한 곳에 주착(住着)되지 않고 자유로워졌다. 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내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비춰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렇게 텅 빈 마음은 허공처럼 세상을 오롯이 담을 수 있게 된다.

‘공부인은 경계에서 빛이 난다’고 했다 따라서 원만한 도를 닦기 위해서는 오직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히신 대로 천만 경계 속에서 삼학 병진을 통해 허공 같은 한 마음을 길들여야 한다.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 내게 세상이 묻는다. 

“지금 도훈이 네 마음은 허공같이 텅 빈 마음인가?”

/원불교대학원대학교

[2023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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