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롤드컵 우승… 게임강대국 맹위
관계, 팀플레이 선호하는 문화적 유전자 바탕
페이커, 임요환, 배재민 등은 청소년들 워너비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가 게임판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출처는 2022 LoL 월드챔피언십에서 프로게이머 ‘데프트’ 김혁규의 첫 패배 후 인터뷰다. 당시 그가 속한 팀 DRX는 국내 정규리그 10팀 중 6위였는데, 강팀을 모두 꺾는 ‘언더독의 반란’ 끝에 우승했다. 이후 ‘중꺾마’는 2002년 ‘꿈은 이뤄진다’의 계보를 이으며, 젊은이들의 패기와 근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다시, 게임의 시대다. 웬만한 겜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롤드컵’에서 한국 T1팀이 최종 우승하면서 대한민국은 ‘맞아, 우리는 원래 게임의 민족이었어’를 외쳤다. 앞서 지난해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처음 e스포츠가 채택됐고, 여기에서 한국은 우승까지 했다. 몰래 하다 들켜서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나 부르던, ‘우리 애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만 해서 걱정이에요’라던 바로 그 ‘게임’의 천지개벽이다. 돌아보면 단 한번도 엔터테인먼트의 왕좌를 내준 적 없고, 전 세계가 ‘숭배’하며 ‘GG(굿게임, 항복선언)’를 치는 K-게임을 ‘정찰’해보자.

 

맵과 전략,
능력치 조합이 무궁무진

2022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 21조. 이는 데이터산업이나 골프, 중고시장 규모를 넘어선 수치다. 전 세계(295조원)로 보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일본과 거의 비등한 4위다. K-게임의 선전은 게임 이용률, 프로게이머의 파급력부터 이제는 수출까지 이르렀다. 특히 전세계 e스포츠 인구가 37억명을 돌파한 이때, 한국의 롤드컵 우승은 세계인들의 마우스에 불을 붙였다.  

그럼 롤과 롤드컵은 무엇인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줄임말인 롤(LoL)은 한 팀에 5명이 참여하는 대항전으로, 각각 캐릭터(챔피언)로 상대에 함께 맞서는 게임이다. 적의 기지(넥서스)를 파괴하면 이기고, 맵과 전략, 능력치 조합이 무한하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이후의 최고 흥행으로, 국가대표 팀들의 ‘월드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이 매년 열린다.

11월 19일 2023 롤드컵 결승은 동시시청 1억명의 대기록 속에 진행됐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광화문광장 거리응원에 1만5천명이 모였다. 롤드컵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관광객만 5만명, 경제효과는 2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역대 최고의 흥행이었고, 코로나19 이후 주춤한 세계 게임계에 선물한 희망이었다. LoL을 출시한 라이엇 게임즈의 최고경영자 딜런 자데자가 “한국이 없었다면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와 현상으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라 잘라 말했을 정도다.
 

그래픽, 새로운 방식, 
캐릭터 강점

세계를 호령하는 K-게임은, 순식간에 전 국토에 깔린 인터넷망과 PC방에서 시작됐다. 당구장을 가기에는 어리고 오락실에 가면 혼나던 학생들이 한 시간에 1000원으로 놀 수 있던 유일한 해방구가 PC방이었다. 

혼자보다 여러 명이 함께 해야 즐겁고, 자신의 성취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나 팀플레이를 선호하는 문화적 유전자도 ‘게임강국 코리아’를 만든 배경이다. 이를테면, 개인적 재미나 기록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콘솔(게임기)게임이 우세하지만, 공동체가 중요한 우리는 꼭 ‘조르륵’ 붙은 PC방 자리와 헤드셋이 필요한 것이다. 단지 ‘하는 게임’을 넘어 ‘보는 게임’이 가능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런 풍부한 토양을 바탕으로, K-게임은 이제 제작과 수출에 팔을 걷어부쳤다. 인지과학자 김상균 경희대학교 교수는 “K-게임의 인기비결은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사용될 정도의 그래픽, K-게임만의 새로운 플레이 방식, 그리고 ‘쿠키런’ 같은 인기 캐릭터에 있다”고 정리하기도 했다. 
 

‘평범한 나’도 
영웅 될 수 있다

더 이상 아이들의 취미로만 치부할 수 없는 K-게임의 인기를 다시 돌아본다. ‘공부도 못하고 부자도 아니지만 게임은 자신있어요’라는 말. 이 말에는 우리들의 인정받고픈 마음, 그리고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유능감이 숨어있다. ‘평범한 나’라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신화가 게임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이제 전설 ‘페이커’ 이상혁이 등장할 차례다. 10년 동안 최정상을 지켜온 그는 27세라는 고령(!)이지만 아시안게임, 2023 롤드컵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추정연봉만 70억인데, 중국의 260억 연봉 제의를 한국에 남기 위해 거절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는 밤새 게임하는 손자 옆을 지키며 응원을 해줬다. 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상혁이는 하루빨리 프로로 뛰는게 낫겠다”며 자퇴를 권유했던 일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저 골방 취미였던 게임을 e스포츠 반열에 올려놓은 건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환이었다. 그는 상금으로 연명해야 했던 프로게이머들을 연봉받는 직업인으로 정착시켰고, 이를 위해 사비로 팀을 유지했던 ‘황제’다. 철권의 신 ‘무릎’ 배재민은 무려 1985년생으로, ‘게임에도 늦은 나이가 없다’를 몸소 보여준다. 만 9세에 데뷔한 카트라이더 역대 최다 우승자 문호준, 탁월하고 압도적인 실력의 워크래프트 장재호, ‘만년 2인자’에서 방송인이자 포커플레이어로 변신한 홍진호 등의 이름을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모두 ‘꿈’이라고 읽는다.

[2023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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