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물살을 가르는 외국 선수 뒤로 스타트가 조금 늦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따라붙는다. 이내 좁혀지는 격차. “황선우 선수 역사상 첫 금메달, 아시아 신기록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껏 흥분한 해설위원의 말을 타고 폭발적 스피드로 역전을 해낸 대한민국 수영팀. 결국 “한국 수영 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입니다!”가 울려퍼진다. 그렇게 거인같은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다부진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당당히 대한민국 국기를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렸다. 

그리고 그 청춘들을 자신의 인생에 피워낸 한 사람이 있다. “저는 선수들이 목표가 아닌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꿈을 이룬 아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어쩌면 가장 큰 환호와 감격의 시간을 보냈을 이정훈 국가대표 수영팀 총감독(법명 정원, 좌포교당). 그는 ‘감독’이기 전에 ‘선생님’이었고, 숫자로 기록되는 ‘목표’보다 그 순간 맞이할 보람찬 ‘꿈’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올해 아시안게임서 총 메달 22개 이뤄낸 수영 총감독
‘함께’라는 결속력으로 한국수영 르네상스 이끌어내  
“마음 부상에 귀기울이는 것은 원불교에서 배운 것”

필살기는 ‘함께’라는 무기
2023년 항저우 아시아게임에서 대한민국 수영은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최초로 단체전 금메달을 기록했다. 이는 일본이 보유한 기록을 14년 만에 갈아치운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사실 수영 종목 가운데 경영수영은 개인 기록이 특히 중요한 종목이다. 그래서 팀경기보다는 비교적 개인 성향이 강조된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메달리스트 선수들은 많은 돈을 들여 페이스메이커 선수와 함께 운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주의 운동’이지만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 당연한 이론에 집중했다. “저는 목표를 항상 단체전에 뒀습니다. 단합이 됐을 때, 돌아보면 그 사이 개인 실력도 함께 성장해있거든요.” 그래서 그는 대표팀 훈련을 선발선수와 후보선수 구분없이 ‘함께’ ‘같은’ 곳에서 진행했다. 

“어린 나이의 선수들이니 서로 함께 친구처럼 놀으라고 무리를 좀 했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문제나 현실적인 벽도 물론 있었지만 이 감독은 기꺼이 그들을 위한 방패가 돼준 것이다. 

“그렇게 ‘함께’ 훈련을 하면 한 선수가 ‘나 못하겠다’ 포기하려다가도 함께하는 동료들을 보며 다시 일어납니다. 그러한 동기부여가 어린 선수들을 빨리 성장시키죠.”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선수들은 정말로 전지훈련, 세계대회 등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 선수들을 넘어 비상하기 시작했다. 
 

옳지만 어려운 길
과거에는 속된 말로 ‘운동을 한다’고 하면 ‘맷집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나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 선수에게 파이팅 응원을 건네거나 잘한다고 격려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했어요. 선수촌이 꼭 군대처럼 느껴졌죠.” 선수촌에서 기록에 따른 체벌과 차별은 당연한 처사였다. 잘못됐지만 쉬운 방법이니까 모두가 ‘그러려니’ 묵인하는, ‘명백한 폭력’이었다. 이러한 문화를 선수 시절부터 뼈저리게 경험해 온 이 감독은 ‘옳지만 어려운 길’을 택하기로 한다.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라고 했어요.” 모두가 처음에는 ‘거짓말이겠지’ 의심하며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를 시간으로 몸소 증명해냈고 선수들은 점차 밝아졌다. 

“선수들이 몸에만 부상을 입는 게 아니고, 마음에도 부상을 입어요.” 이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상황에 귀 기울였다. 가정문제나 선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 또 그로부터 비롯되는 우울증까지 어느 것 하나도 사소하게 보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은 그저 하나의 경기이지만 부상은 선수를 오래 괴롭혀요.” 그는 ‘금메달을 많이 딴 감독’이라는 말보다 ‘마음의 부상을 경계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더 자랑스러워 한다.

원불교라는 노스텔지어
밝은 햇빛이 가득 들어오던 창문, 우다다다 아이들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마루, 잠이 올 것처럼 편안하던 목탁소리까지. 이 감독에게 좌포교당은 그 시절 친구와 어머니가 아직 있는 고향 같은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그의 어머니(박신원 교도)와 친구는 그 교당을 그대로 다닌다. 

총감독으로서 대한민국 수영의 모든 종목을 총괄하고 지휘하며 50여 명의 선수와 11명의 코치진을 이끌다 보면 막중한 책임감에 가끔은 가슴이 터질 듯 하다. 

그럴 때 그는 원불교라는 고향을 떠올린다. “하루는 어머니께 ‘원불교가 왜 좋냐’고 여쭤봤어요. ‘그냥 좋다’고 하시더군요. 그냥이라는 말은 ‘편안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저도 원불교를 그냥 좋아해요.” 어릴적 기억처럼, 힘들 때 떠올리는 원불교는 여전히 푸르다.

수영의 기본조건은 균형 유지다. 몸의 자세를 곧게 하고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첫 걸음인 것. 대항하고 저항하는 게 아니라 가르며 나아가는 운동인 수영에서 배운 것을 그는 원불교 공부와 연결해 설명한다.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가끔은 생각도 비워야죠. 가라앉지 않으려면요.” 비워진 자리에는 또다른 생각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나 갈등에 맞서지 않으면 언젠가 ‘정상’에 선다. 

[2023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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