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4년(1919), 소태산 대종사 변산에 입산하다

입산하여 임시로 머물던 변산 월명암의 옛 모습
입산하여 임시로 머물던 변산 월명암의 옛 모습

소태산 대종사가 처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邊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영산에서 간석지 방조제 공사가 준공될 무렵인 원기4(1919)이었다. 이 무렵, 소태산 대종사는 영광경찰서에 연행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났다.

방언공사 마무리를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는 수양처를 찾아 윗녘인 변산에 있는 월명암(月明庵)으로 갔다. 월명암에는 영광 사람인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주지로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를 마무리하고 법인기도를 시작해 821(음력 726) 법인성사를 이룬 후 정산종사를 월명암으로 보내며 회상 창립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연구해 보라고 했다.

그 후 소태산 대종사는 김제 금산사를 거쳐 1212(음력 1020) 변산으로 출발해 이튿날 월명암에 도착했다. 학명 선사와 불교의 혁신 사상을 토론한 결과, 두 사람은 공감되는 바가 많아 그 교의(交誼)가 각별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변산에 입산한 뜻을 정산종사는 오랫동안 복잡한 정신을 다시 휴양하기 위하심이요, 재래 불법의 교리와 제도를 실지 참고하여 장차 혁신할 본회의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려 하심이요, 사방에 있는 인연을 서로 연락하여 장차 회문(會門)을 열 준비하기 위하심이요, 분망한 세상에 또한 중인(衆人)의 지목을 피하기 위하심인 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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